아베 코보의 소설 『모래의 여자』에는 의미심장한 한 문장이 나옵니다.
“모래의 알갱이는 1/8밀리미터였다.
그 크기가 바로 모래를 모래답게 만든다.
너무 크면 자갈이고, 너무 작으면 먼지다.
모래는 언제나 무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흘러내린다.”
1/8밀리미터.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작은 알갱이가 집을 무너뜨리고 마을을 뒤덮으며,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습니다.
작음이 무력함이 아니라, 때로는 압도적 힘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소설 속 모래는 부조리와 파괴의 힘을 상징하지만,
저는 그 작은 단위 속에서 역설적으로 신앙의 신비를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겨자씨 믿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옮기리라”(마 17:20).
겨자씨는 1~2밀리미터 남짓한 작은 씨앗이지만,
자라면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드는 쉼터가 됩니다.
모래와 겨자씨는 공통적으로 ‘작음의 힘’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모래가 삶을 무너뜨리는 부정적 힘이라면,
겨자씨 믿음은 인간을 세우고 공동체를 살리는 긍정적 힘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 믿음은 너무 작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그 작은 믿음을 귀히 여기십니다.
믿음은 양적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의탁하는 질적인 힘이기 때문입니다.
모래의 1/8밀리미터가 세상을 잠식하듯,
겨자씨 믿음도 우리의 존재를 온전히 채우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의 현실 또한 모래와 같습니다.
끝없이 스며들어 삶을 무너뜨리는 불안, 허무, 세상의 압력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래 같은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주십니다.
작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믿음, 겨자씨 같은 믿음을 심어 주십니다.
작음 속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신비.
그것이야말로 신앙의 본질이 아닐까요?
인간의 눈에는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 나라의 가능성이 담겨 있습니다.
모래와 겨자씨 사이에서, 저는 작은 것의 힘을 묵상하며 다시금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