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묵상 35 - 지혜와 어리석음 사이에서(7장 총정리)

세상은 언제나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곳이다.
해 아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한없이 기뻐할 일들 앞에서는 온몸으로 웃음을 터뜨리지만, 원치 않는 고통 속에서는 종종 당혹하거나 주저앉는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사소한 것에도 기뻐하라고 말한다.
기쁨을 억누르지 말라고. 그렇다면 슬픔은 어떨까? 그것은 억누르거나 무시할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존재의 그림자이다. 전도자는 이 고통 앞에서의 자세에 대해 지혜를 권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7:3)
이 말은 슬픔을 예찬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웃음 속에 감춰진 허망함보다 슬픔 속에서 오는 통찰과 깊이를 귀히 여기라는 초대다. 전도서 7장은 지혜와 어리석음, 고난과 번영, 의로움과 불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몸부림처럼 읽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인간의 알 수 없음이 있다.
“지혜자가 되려고 해도, 그것은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7:23)
전도자는 지혜를 구했지만 다 얻지 못했다. 더 깊이 파고들수록 미궁처럼 펼쳐지는 삶의 모순들, 설명할 수 없는 고통들 앞에서 그는 솔직하게 말한다. 지혜는 한계가 있고, 인간은 결코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고.
그런 점에서 전도서는 진정한 신앙의 고백서이다.
하나님을 믿기에 오히려 그분 앞에서 침묵하고, 무릎 꿇고, 기다릴 수 있는 자리에 서는 것. 그것이 지혜다. 노자의 도덕경은 말합니다. "도는 도라고 이름 붙여지는 순간 참된 도가 아니다." 지식은 더 알수록 무지의 경계에 이른다. 믿음은 아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음을 인정하고 신뢰하는 용기다.
전도자는 스스로의 꾀에 빠진 사람들을 지적한다. 어떤 이는 의로움을 자랑하며 다른 이를 판단하고, 어떤 이는 악을 도리어 자랑하듯 행한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의인이라고 지나치게 의롭지 말며, 스스로 지혜자라 하지 말라. 어찌하여 네가 스스로 폐망하게 하느냐?” (7:16)
그것은 균형의 말씀이자, 신앙의 태도에 대한 권면이다다. 의로움은 자기자랑이 될 수 있고, 악함은 자포자기의 가면이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이다다. 그것이 바로 참 지혜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28)
이 말씀은 전도서 7장의 깊은 통찰과 연결된다.
삶의 무게와 모순을 직면하는 자들, 그러나 그 안에서 여전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 그들에게 예수는 안식을 약속하셨다.
마지막으로 전도자는 한탄하듯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들이 스스로 수많은 꾀를 만들어냈다.” (7:29)
이 구절은 인간의 타락과 자기기만을 고발한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심판하기 전에, 나 자신의 꾀와 욕망을 먼저 돌아보는 것, 그것이 신앙인의 자세다. 예수께서 "비판하지 말라" 하신 말씀은 판단을 유보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이들을 함부로 정죄하지 말라는 뜻이다.
결국, 전도서 7장은 이렇게 말한다.
지혜를 추구하라.
그러나 그것을 움켜쥐려 하지 말라.
모른다는 것을 아는 자가 진정한 지혜자이다.
슬픔을 두려워 말라.
그것이 너를 더 깊은 곳으로 이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단순하고도 깊은 지혜임을 잊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