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헌물의 무게는 무엇으로 잴 수 있는가”

  • 관리자
  • 2025-08-04 06: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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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 대형교회에서 사용 중이라는 헌물 안내 이미지를 보았습니다.
옥상 십자가 2억 3천만 원, 등기구 2억 1천 7백만 원, LED 전광판 1억 9천 7백만 원…
총 21개의 장비가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각 항목마다 정확한 가격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헌물 이미지에 체크 표시를 해주시고, 교구, 이름, 전화번호를 기입하여 헌금함에 제출해 주세요.”

 

한동안 그 이미지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백화점 전단을 보는 것 같았고, 기업 후원용 장비 리스트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의,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집을 위한 ‘헌물’ 목록이었습니다.
 

드림이 아니라 ‘구매’가 되어버린 신앙

‘헌물’이라는 단어는 자발성과 기도의 무게를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숫자와 장비만 남아버린 이 목록엔 결단의 고백도, 감사의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교회는 더 좋아 보이려 하고, 성도는 이름을 남기려 하며, 장비는 곧 예배의 질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스피커로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 한 사람의 꺼져가는 심령이 다시 살아날 때 완성되는 것입니다.

예수라면 무엇에 헌물하시겠는가?

예수님은 화려한 성전을 자랑하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것들을 보고 있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질 것이다.”
– 마태복음 24:2

만약 예수님께 이 리스트를 보여드린다면,
‘디스플레이 시스템 멀티뷰어’가 아니라, ‘소외된 자의 얼굴’을 가리키지 않으실까.
‘발코니 스피커’가 아니라, ‘침묵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라 하시지 않을까.

2억이 넘는 LED 전광판을 달기 전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통이 새겨진 십자가의 그늘 아래 잠시 멈추어야 합니다.

 

 ‘무엇을 드릴까’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교회가 장비를 갖추는 일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더 나은 예배, 더 정돈된 음향과 조명은 공동체에 유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우리는 묻고 반성해야 합니다.

이 헌물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장비가 없으면 예배는 불완전한가?
이 목록을 보며 가난한 성도는 어떤 마음일까?

예배의 품격은 시스템의 완성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무릎 꿇은 이의 눈물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음향이 아닌 울림을 들으시고,
화질이 아닌 마음을 보신다.
신앙이란 값비싼 스피커가 아니라,
작은 자의 신음에 귀 기울이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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