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묵상 28 – 잔칫집보다 초상집이 낫다(7:1-6)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낫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모든 사람의 끝이 그러하니, 산 사람은 그것을 마음에 둬야 한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얼굴에 근심이 있을 때, 마음이 더 나아진다.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나,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즐거운 집에 있다.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낫다.
어리석은 자의 웃음은 가마 밑에 가시나무 타는 소리와 같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헛되다.”
(전도서 7:1–6)
기름보다 이름이 낫다, 그러나...
사람은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이름을 남기고, 자취를 남기고, 그 이름이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원한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기억 속에서조차 지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름이 늘 영광만은 아니다.
이름은 명예일 수도 있지만, 오욕의 상징일 수도 있다.
기름보다 나은 이름이 있는가 하면, 기름보다 못한 이름도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전도자는 말한다.
“좋은 이름이 좋은 기름보다 낫다.”
무엇이 좋은 이름인가?
그것은 단지 유명하거나 기억된다는 뜻이 아니다.
좋은 이름은 생의 향기다.
한 생명이 얼마나 진실하게, 얼마나 자기답게 살다 갔는지를 담은 고요한 증언이다.
죽음이 말해주는 삶의 진실
“죽는 날이 태어나는 날보다 낫다.” 이 말은 충격처럼 들린다.
누구나 탄생을 기뻐하고, 죽음을 피하려 한다.
그런데 전도자는 말한다.
탄생은 가능성이요, 죽음은 결산이다.
탄생은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았지만, 죽음은 그 사람의 생을 가늠하게 한다.
그러므로 죽음은 삶의 최종 해석이다.
삶이 어떠했는지는 죽음의 장면에서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삶을 최종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죽는 날이 태어난 날 보다 나은 것이다.
잔칫집은 웃음이 넘치지만 진실은 가볍다.
초상집은 눈물이 흐르지만, 삶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웃음보다 근심이 낫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이 역설은 우리가 감정에 휘둘리지 말아야 함을 일깨운다.
웃음이 꼭 기쁨의 증거는 아니며, 근심이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슬픔은 사람을 깊게 만들고, 근심은 마음을 정화시킨다.
웃음은 순간을 장식하지만, 슬픔은 영혼을 단련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슬픔 속에서 배운다.
지혜는 웃음 뒤가 아니라, 눈물 속에서 자란다.
가시나무 타는 소리 같은 웃음
“어리석은 자의 웃음은 가마 밑에 가시나무 타는 소리와 같다.”
거칠고 시끄럽고, 잠깐 불타오르다 꺼지는 불꽃.
허세와 과장, 비어 있는 말장난, 속은 비었는데 겉은 요란한 웃음.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자의 웃음이다.
노래보다 책망이 낫고, 흥청거림보다 침묵 속의 통찰이 낫다.
삶의 끝에서 묻는다
전도자는 우리를 초상집으로 이끈다.
왜냐하면 거기서야 비로소 삶을 진지하게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의 끝을 떠올릴 때에야 무엇이 진짜 가치 있는 것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화려한 잔칫집이 아니라, 인생의 무게를 견딘 사람들이 남긴 자리다.
그 자리에서 들려오는 고요한 책망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우리의 삶도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 어떤 향기를 남기게 될지 마음에 두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 흔적이 남지 않아도 허무한 것이 아니다.
이생의 삶을 살았다는 것만으로 귀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