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묵상 27 –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사람
“이미 있는 것은 오래전에 그 이름이 지어진 것이며,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알려졌다.
그는 자기를 강하게 만든 이와 다툴 수 없다.
말이 많으면 헛된 것도 많아진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
그림자 같은 생명의 날들 동안,
사람이 무엇이 좋을지 누가 알겠는가?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전도서 6:10–12)
“이미 있는 것”
“이미 이름 지어진 것”
“사람이 무엇인지도 이미 알려졌다.”
이 반복되는 "이미"라는 단어는 창세기의 질서를 되새기게 한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이름 지어졌고,
그 이름은 그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정체성이었다.
이름은 곧 한계의 선언이며, 정체성의 고백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기를 만드신 분과 다투려 한다.
왜일까?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 싶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다투는 인간 – 자리 바꾸기의 죄
인간의 모든 욕망의 핵심은 ‘자리 바꾸기’이다.
창세기에서 뱀이 하와에게 말한 유혹,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이 말 한마디에 인간은 흔들린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처럼 살려 한다.
스스로 생명의 주인처럼,
역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처럼,
다른 사람의 삶까지 심판하려 한다.
그러나 전도자는 말한다.
“그는 자기를 강하게 만든 이와 다툴 수 없다.”
이 말은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를 선포하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지만,
결코 하나님이 될 수는 없다.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인생의 낙이 무엇인지도, 죽음 이후에 무슨 일이 있을지도 결코 알 수 없다.
생명의 날은 그림자처럼 흘러간다
이 땅에서의 생명은 그림자처럼 덧없고 가볍다.
욕망을 좇으며 살아도 결국 남는 것은 ‘헛됨’이다.
말이 많아질수록 헛됨도 많아진다.
말로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말로 자기 삶의 정당성을 포장하지만 그 모든 말들은 그림자일 뿐이다.
삶은 짧고, 인생의 의미는 모호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인간의 본질과 운명은 이미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수록 삶은 더욱 헛되어진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고자 하는 오만한 욕망이야말로
인생을 가장 고통스럽고 피폐하게 만든다.
사람은 하나님처럼 귀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아니다.
하나님처럼 살고자 할 때,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 하기보다,
하나님의 자리에 그분을 온전히 모셔 드리는 것이다.
그때야말로 우리의 생명은 그림자처럼 헛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의미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