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전도서 묵상 26 – 식욕, 식탐, 그리고 마음의 방향

  • 관리자
  • 2025-08-01 08:00:00
  • hit219
  • 219.251.41.124

전도서 묵상 26 – 식욕, 식탐, 그리고 마음의 방향

“사람이 수고하는 것은 다 자기 입을 위함이지만,
그 식욕은 채워지지 않는다.
지혜자가 우매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며,
살아 있는 자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아는 가난한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이 원하는 것보다 낫다.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 같다.”
(전도서 6:7–9)



인간의 모든 수고가 결국 입을 위한 것,
즉 생존을 위한 식욕 때문이라는 고백은 무겁게 다가온다.
그런데도 식욕은 채워지지 않는다.
이 말은 단순한 배고픔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는 식욕을 넘어선 ‘식탐’의 시대에 살고 있다.
더 많이 먹고, 더 맛있게 먹고, 더 자극적으로 먹고자 하는 욕망.
이 욕망은 건강을 해치고, 병을 부르고,
또 다른 한편에선 굶주림과 기아로 죽어가는 이들의 비극을 무심히 외면하게 만든다.
그것은 단지 개인의 탐식 문제가 아니라,
지구 공동체 전체의 불균형과 불의에 대한 증표이기도 하다.

에덴에서의 죄는 배고픔 때문이 아니었다.
하와가 본 그 열매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다.
이것은 단순한 식욕이 아니라, 탐욕으로 진화한 욕망이었다.
식욕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 안에 있는 욕망이 끊임없이 외부의 것,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으로 향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헬렛은 말한다.
“눈으로 보는 것이 마음이 원하는 것보다 낫다.”
이는 ‘현실에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라,
헛된 공상과 환상 속에 사는 인생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말이다.
욕망은 보이는 것을 통해 자극받고,
그 자극은 마음에 새로운 결핍을 만들어낸다.
결국 ‘공상’은 우리의 마음을 바람처럼 흩어지게 만들 뿐이다.

식욕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이 탐욕이 되면 삶은 균형을 잃는다.
이 불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 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권면했다.
예수의 마음은 자기 욕망을 비우고,
자기를 낮추며,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마음이었다.
예수의 마음을 품는 자는,
보는 것 하나에도 책임이 따르고,
입에 넣는 음식 하나에도 절제가 배어 있으며,
그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다.

인간의 수고는 생존을 위해서이지만,
그 수고가 과도한 탐욕으로 변질될 때 삶은 무너진다.
과식과 기아가 공존하는 이 세계는 인간의 끝없는 소비 욕망이 만든 구조적 죄다.
눈으로 보는 것이 나을지라도,
무엇을 보는가, 어떤 마음으로 보는가가 관건이다.
보이는 것을 욕망하지 않고,
보이는 것을 통해 선을 이루는 사람, 그가 지혜로운 자다.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
보는 것이 탐욕의 창이 아니라 자족의 눈, 나눔의 창, 생명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