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묵상 23 – 소유는 축복인가, 족쇄인가
“내가 해 아래에서 큰 불행을 보았는데,
그것은 재물이 그 가진 자에게 해가 되는 경우이다.”
(전도서 5:13)

코헬렛은 놀라운 통찰로 시작한다.
재물은 축복이 아니라 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재물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 재물이 ‘어떻게 소유되었는가’가 문제다.
재물이 해가 되는 경우는 대개 소유를 독점했을 때 나타난다.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고,
타인과 나누지 않고,
자기 위안을 위해 과소비한다.
과소비는 결국 인간을 소비자로 만든다.
욕망은 끝이 없고,
재물은 그 욕망을 조장하는 연료가 된다.
'소비자'라는 말은 인간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과 대상으로 규정하는 사회의 언어다.
삶은 존재의 문제이지, 소비의 총량으로 정의될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축적한 재물도 환난의 때를 만나면 다 사라진다.
그리고 재물의 단맛을 알게 된 자에게 빈손은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그는 어머니의 태에서 나올 때처럼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돌아간다.” (5:15)
이 구절은 요즈음 장례식에서 자주 인용되지만,
사실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말씀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존재, 이것이 인간의 실상이다.
그러니 제물의 많고 적음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코헬렛은 또 하나의 진실을 보여준다.
“그는 평생을 어두운 곳에서 먹으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다.” (5:17)
부자는 부자의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근심과 분노의 포로가 되기도 한다.
'어두운 곳에서 먹는다'는 것은
혼자, 불안하게, 위장된 평안 속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마약과 같은 중독성 소비, 잠깐의 쾌락을 위한 향락,
혹은 정신적 공허를 달래는 가짜 위로들.
부를 가졌지만 삶은 가난해지고, 가진 것이 많아도 마음은 황폐해진다.
코헬렛은 이렇게 묻는다.
무엇이 인생을 진실하게 만드는가?
무엇이 사람을 밝은 식탁으로 이끄는가?
답은 분명하다.
재물은 나눌 때 의미가 있고,
소유는 ‘나’가 아니라 ‘우리’로 확장될 때 축복이 된다.
욕망의 소비자가 아니라 자족의 삶을 실천하는 자,
그 사람이 진정 부유한 사람이다.
“소유는 곧 책임이다.
재물은 나눌 때 선이 되고,
비움은 결국 더 깊은 평안을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