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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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묵상 17 – 눈물의 자리에 서 계신 하나님(4:1-3)

  • 관리자
  • 2025-07-22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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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묵상 17 – 눈물의 자리에 서 계신 하나님(4:1-3)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일어나는 모든 학대를 보았다.
보라,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에는 그들을 위로할 이가 없고,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력이 있었다.” (전 4:1)

 

전도자는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장면을 바라본다.
학대받는 자들이 울고 있다.
그 눈물은 말이 없다.
말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로해 줄 이가 없다.
그저 권력은 여전히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 쥐어져 있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억압은 정당화되고, 고통은 외면된다.

그래서 전도자는 말한다.
차라리 죽은 자가 산 자보다 낫고,
아예 태어나지 않은 자가 더 복되다고.

코헬렛의 이 말은 차가운 절망의 선언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뜨거운 현실 인식이 녹아 있다.
그는 삶을 혐오해서가 아니라,
삶의 불의와 고통을 정직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이토록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가자지구의 아이들이 하늘도 보지 못하고 죽어간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이는 자들,
거룩을 빙자한 제노사이드,
침묵하는 세계,
말 많은 종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하늘.
그러나 이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침묵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함께 우시는 사랑일 수 있다.

전도자는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에서
‘해 아래’의 진실을 본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해 아래’가 전부가 아니며,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그래서 이 말씀은 오히려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누구의 눈물을 외면하고 있는가?”

그 눈물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 곁에 서 있는 것, 그 침묵 속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따르는 길이 아닐까.

삶이 고통스럽다 하여 그 자체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전도자의 탄식은 삶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삶의 고통을 직시하라는 외침이다.
속담에 이르기를 “개똥밭을 굴러도 살아 있는 게 낫다”고 했다.

하지만 때로는
전도자의 말이 더 진실하게 들리는 날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눈물 흘리는 이의 곁에 서기 위해,
눈물을 닦아주는 손이 되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는, 그 눈물이 닦이는 날이 오리라는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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