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묵상 16 -해 아래에서 죽음을 바라보다 (3:18-22)
“사람의 운명은 짐승의 운명과 같으며,
이들에게 닥치는 일이 저들에게도 닥친다.
모두 같은 숨을 지녔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나은 것이 없도다.
모든 것은 헛되다.”
(전 3:19)
전도자는 인간 존재를 깊이 성찰한다.
사람이 당하는 운명이 짐승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모두 흙에서 왔고,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
죽음이라는 절대적 현실 앞에선
사람도 짐승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예외가 없다.
이 구절은 단순한 허무의 탄식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한계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고백이다.
전도자는 말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셔서,
사람이 짐승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하려 하셨다”(3:18).
그러나 이때의 ‘시험’은 곡해되어선 안 된다.
하나님은 인간을 고통스럽게 시험하는 분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분이다.
욥기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시련을 주시는 분이기보다
시련 중에 곁에 계신 분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참된 의미는,
인간이 스스로의 유한성과 나약함을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가깝다.
이 구절은 죽음을 운명론적으로 수용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전도자는 말한다.
“사람에게 자기 일을 기뻐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3:22).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지만 미래를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니 현재를 사랑하며, 자기 손으로 하는 일을 기뻐하라고 한다.
삶이 언젠가 끝나기에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길이다.
죽음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더욱 귀하게 여기는 것.
전도자가 말하는 지혜는 거기에 있다.
‘해 아래의 삶’은 덧없지만,
덧없기에 더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
죽음의 그림자는
오히려 삶의 빛을 선명하게 한다.
오늘도 우리는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기쁘게 감당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사명을 자각하고,
그 일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다운 길이다.
죽음을 끝이 아니라,
삶의 정직한 경계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해 아래’에서도 하나님의 영원을 사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