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슬기도 어리석음도 바람처럼(2:12(하)–17)
"그러나 나는 깨달았다. 결국은 어리석은 사람이나 나나 똑같은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 전도서 2:14
전도자는 한 걸음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간다.
지혜가 어리석음보다 낫다고 하면서도, 곧이어 그것마저 무너뜨린다.
왜냐하면 결국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나 같은 종말, 곧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지혜가 삶을 더 밝게 비추어주는 등불 같을지라도, 죽음이라는 그림자는 모든 생에 동일하게 드리워진다.
생로병사의 흐름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
지혜로운 자도 병들고 늙고 죽는다. 지혜롭다고 하여 고통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서글픈 건 따로 있다.
어리석은 자들이 지혜로운 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손가락질하고 조롱하며 멸시할 때의 허탈감이다.
지혜를 말해도, 그 말이 공명되지 않을 때, 지혜자는 깊은 무력감을 느낀다.
이 고통은 예수께서도 겪으셨다.
가장 깊은 진리를 말했으나, 그 진리가 조롱당하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으로 돌아왔던 그 분.
예수조차도 외면받은 진리 앞에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셨다.
그러니 전도자가 말한 “모든 것이 헛되다”는 외침은, 어쩌면 모든 참된 지혜자가 겪는 통과의례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혜는 무력한 것인가?
지혜조차도 무너질 것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바로 여기서 우리는 ‘한계’의 의미를 다시 보아야 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한계를 가진 존재다.
그 사실을 수용하는 사람만이 겸손해진다.
지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전능의 선언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아는 성찰에서 시작된다.
이 세상은 지혜를 계산 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지식의 양으로 판단하지만,
진짜 지혜는 살아낸 자만이 말할 수 있는 앎이다.
그리고 진짜 지혜자는 죽음이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음을 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결론짓는다.
“그 모든 것이 헛되다.” (17절)
그러나 그것은 포기의 말이 아니라, 참된 앎 앞에서의 침묵이며 겸허함이다.
허탈함은 무의미함이 아니라, 의미 너머를 향한 열림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슬기와 지혜는 결국 무력해지는가?
그렇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더욱 귀한 것이다.
가볍기 때문에 바람 같고, 덧없기 때문에 찰나의 빛을 품는다.
그 지혜는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래에서’ 삶의 자리로 돌아오게 한다.
삶은 결국 수고의 연속이다.
그 수고조차 헛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 없이 해 아래에 사는 모든 삶이 그렇듯,
진짜 새로움은 하나님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지혜로움의 허탈감,
그것은 우리가 지혜를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지혜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