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전도서 묵상 10 - 은혜마저 헛되게 만드는 욕망(2:1–12)

  • 관리자
  • 2025-07-14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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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은혜마저 헛되게 만드는 욕망(2:1–12)

"내가 스스로 말하였다. '자, 내가 너를 시험해 보겠다. 즐거움을 맛보아라.' 그러나 그것도 헛되었다."
– 전도서 2:1

 

전도자는 한 번쯤 우리가 모두 꿈꾸는 삶을 실험해 본 사람이다.
“자, 내 마음아, 한 번 실컷 즐겨보자!”
그는 자신에게 허락된 수단과 자원으로 최상의 삶을 만들어 보려 했다.

웃음과 즐거움, 술과 오락, 사업과 성취, 그것도 다 허무했다.
이 구절은 단순한 금욕주의적 경고가 아니다. 오히려 실존적 실험의 기록이다.

전도자는 쾌락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쾌락에 삶의 의미를 걸어보았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지속적인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다. 잠깐의 위안은 있었지만, 깊은 기쁨은 없었다.그는 술도 마셔보고, 지혜도 추구해보고, 자신이 세운 동산, 집, 포도원, 수목원, 가축과 종과 은금, 세상의 어떤 부요도 누려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결론은 하나였다.

“헛되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 (2:11)

모든 성취가 바람과 같다면 우리는 때때로 질문한다.
“수고하여 성취한 것이 왜 헛되단 말인가?”
그 수고는 내 피와 땀으로 얻은 것이고, 그 성취는 밤잠을 줄이며 이룬 결과다.
그러나 전도자는 말한다.
“그 모든 수고조차도 해 아래서는 바람과 같다.”

그는 결코 게으르지 않았고, 무능하지도 않았다.
그는 당대 최고의 부자였고, 지혜자였으며, 통치자였다.
그런데도 그의 결론은 ‘헛됨’이었다.
왜일까?
그 이유는 하나다.
“하나님 없는 수고는 헛되기 때문이다.”
전도자는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놓지 않고 자기의 능력과 성취, 감각과 지혜로 무언가를 이루려 했을 때, 그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는 빛나지만 결국 바람처럼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다르지 않다.
그들은 지쳐 있지만,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욕망은 신앙 속에서도 작동한다.
“하나님의 은혜”조차도 자기 욕망을 정당화하거나 성취를 위한 도구로 삼는다.
기도도, 헌신도, 신앙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을 위한 투자처럼 되어버린다.
은혜마저 헛되게 만드는 삶, 그것이 바로 해 아래의 현실이다.

전도자의 고민은 결국 이 질문으로 향한다.
“나는 왜 원하는 것을 다 이뤘는데도, 기쁘지 않은가?”
그의 결론은 선명하다.
욕망이 인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다.
욕망은 불을 지피는 연료가 아니라, 그 불에 타 죽는 스스로를 재촉하는 가속기다.
그래서 전도자는 쾌락을 해보았고, 소유를 실현했고,
지혜로도 삶을 통찰하려 했지만,
그 모든 것이 헛된 것이 되어 돌아왔다.
지혜조차도 자기중심적으로 쓰이면, 헛된 것이 된다.
은혜조차도 욕망의 수단이 되면, 바람과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전도자가 말하지 않는 답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는 삶이다.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어졌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는 삶.
내가 세운 것에 의미를 두기보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존재의 시간과 관계에 마음을 두는 삶.
그 삶은 수고 자체가 의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수고가 제자리를 찾는 삶이다.
쾌락도, 성취도, 심지어 지혜조차도 하나님 없이 사용되면 ‘헛됨’이 되지만, 하나님 안에서 누려지면 그 모든 것이 ‘은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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