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전도서 묵상 9-지혜의 깊이만큼 커지는 울분

  • 관리자
  • 2025-07-1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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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지혜의 깊이만큼 커지는 울분

“구부러진 것은 곧게 할 수 없고, 없는 것은 셀 수 없다.”
– 전도서 1:15
“지혜가 많아지면 울분도 많아지고, 지식을 더하면 아픔도 더한다.”
– 전도서 1:18



전도서의 첫 장은 점점 더 깊은 물속으로 들어간다.
처음에는 ‘헛됨’이라는 단어로 시작되었고, 이어지는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수고는 바람을 잡으려는 일로 묘사되었다. 이제 전도자는 본질적인 인간 조건, 곧 “굽어 있음”과 “지혜의 슬픔”을 말한다. 이 두 구절은 서로를 반영하듯, 인간의 실존적 한계와 그 한계를 직시하는 지혜가 불러오는 고통을 동시에 드러낸다.

굽은 것은 곧게 할 수 없다. 
전도서 1장 15절은 짧지만 단호하다.
“구부러진 것은 곧게 할 수 없고, 없는 것은 셀 수 없다.”
이 말은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라는 선언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일이 있고, 붙들 수 없는 공허가 있다. 이 말은 정치적 개혁, 윤리적 혁신, 사회 구조적 변화에 대한 회의가 아니다. 그보다 더 근원적인 선언이다. 인간 존재 자체의 구부러짐, 자기중심성과 이기성, 탐욕과 두려움으로 뒤틀린 실존을 말하는 것이다. 전도자는 이 사실을 피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을 ‘가능한 존재’가 아니라, 한계를 안고 태어난 존재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 한계 앞에 겸손히 서야 비로소 지혜가 시작된다고 본다.

지혜는 아픔을 동반한다
하지만 참된 지혜는 그 한계를 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지혜는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지혜가 많아지면 울분도 많아지고, 지식이 더하면 아픔도 더한다.” (1:18)
지혜는 세상의 어그러진 현실을 깨닫게 하고, 지식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게 하며,
진실은 침묵 속의 외침을 들을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진짜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눈으로 보지 않던 것을 보게 하고, 묻지 않던 질문을 하게 하며, 감추어진 눈물에 동참하게 만든다.

지혜는 결코 똑똑해지는 기술이 아니다.
지혜는 연약함을 아는 능력이며, 존재의 구부러짐을 인정하는 용기다.

나는 구부러진 존재다.
어쩌면 이 고백이야말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가장 깊은 지점일지도 모른다.
“나는 구부러진 존재다.”
이 고백은 패배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이 고백은 진짜 겸손으로 나아가는 문이다.
우리는 모든 걸 해결하려 한다.
모든 것을 ‘곧게’ 만들고, ‘없는 것’을 억지로라도 ‘있는 것처럼’ 셀 수 있으려 한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더 큰 환멸과 피로를 가져온다.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아내야 할 신비다. 존재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감싸 안을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 머물 수 있는 이가 비로소 지혜로운 사람이다.

지혜가 아픔을 더하게 만들고, 지식이 울분을 불러일으킨다 해도, 우리는 그 길을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아픔을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자기중심성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혜는 아파하면서도 받아들이는 훈련을 요구한다.
세상을 곧게 만들 수 없다면, 그 구부러진 세상 속에서 조금 더 반듯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없지만, 그 속에서 바르게 살아갈 수는 있다. 그 삶은 ‘지혜롭게 말한다’는 것보다, ‘묵묵히 감내한다’는 쪽에 가깝고, ‘정답을 말하는 사람’보다는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한다. 

전도자의 고백은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너 자신의 구부러짐을 인정하는가?"
"그 아픔을 지혜로 살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지 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태도이고, 영혼의 훈련이다.
지혜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고통 속에서 훈련되는 것이다.
그 훈련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겸손하게, 조금 더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지혜는 많이 알게 될수록 아픈 것이다.
그러나 그 아픔이 곧 하나님의 마음에 가까워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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