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지혜를 탐구하는 고통, 말해도 들리지 않을 때
“나는 하늘 아래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지혜로 연구하고 살펴보는 일을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맡기신 고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전도서 1:13
전도자가 내리는 결론은 짧지만 무겁다.
“고된 일이다.”
하늘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들을 지혜로 연구하고, 살펴보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일이란 고된 일이다. 지독하게, 때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바로 그 일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셨다.
전도자가 말하는 ‘지혜’는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의 축적이 아니다.
지혜는 더 깊은 차원의 앎이다.
삶 전체를 꿰뚫는 통찰이며, 이론이 아니라 살아낸 결과로서의 앎이다. 지식은 책상 위에 쌓이고, 지혜는 고통 위에 뿌리내린다. 지식은 설명할 수 있지만, 지혜는 살아내야만 이해된다. 지식은 전달되지만, 지혜는 공감되지 않으면 무력해진다.
전도자는 바로 이 지혜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혜를 연구하는 일,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일을 고통이라고 말한다.
그 고통은 단순한 피로함이 아니다. 그 고통은 말해도 들리지 않는 데서 오는 절망이다.
가장 큰 괴로움은, 전해지지 않는 진실 전도자가 본 해 아래의 세상은 혼란스럽다.
의인은 고통받고, 악인은 흥하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며, 정직한 말은 무시되고, 거짓된 언어가 환영받는다.
그 가운데에서, 그는 묻는다.
이 모든 것이 정말 지혜로운 일인가?
그렇게 말하는 자신도 때로는 답을 알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고통은 따로 있다. 지혜를 발견했을 때조차, 그 지혜가 공명되지 않을 때, 그는 더 깊은 절망에 빠진다.
우이독경(牛耳讀經), 소 귀에 경을 읽는다는 말처럼, 아무리 말해도 전해지지 않는 진실, 아무리 지혜를 나누어도, 다들 제 갈 길만 가는 세상, 그것이 전도자가 느꼈던 지혜의 무력감이고, 동시에 그가 왜 ‘헛됨’을 말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보여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전도자는 이 고된 일을 하나님이 맡기셨다고 말한다.
지혜를 추구하고, 세상의 이치를 관찰하고,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일들을 끝없이 고민하는 그 삶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 말은 모든 시대의 ‘깨어 있는 이들’에게 주어진 숙명과도 같다. 보는 자의 고통, 느끼는 자의 외로움, 묻는 자의 피로, 그리고 말해도 들리지 않는 자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침묵.
하나님은 왜 이 고된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는가?
그것은 지혜를 얻으라고 주신 고난이자, 세상의 무지를 견디는 영적 훈련이기 때문이다.
지혜는 세상의 논리로 통하지 않는다. 지혜는 계산이 아니다. 지혜는 논리의 정합성으로만 납득되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사랑과 고통을 지나 침묵 속에서 탄생한다. 지혜는 더디고, 느리고, 돌아가는 길 같지만, 그것만이 진실에 도달하는 길이다. 그런데 문제는, 해 아래의 사람들은 대부분 지혜를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언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는 늘 소수의 언어가 되고, 지혜로운 자는 세상에서 어리석은 자처럼 취급받는다.
바울도 말하지 않았던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요,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고전 1:18)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의 지혜를 부끄럽게 하며,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말해도 들리지 않는 세상, 지혜를 말하면 말할수록 외로워지는 삶, 그러나 우리는 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 지혜는 단지 내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묻는 모든 질문, 우리가 살펴보는 모든 일, 우리가 감당하는 모든 ‘고된 일’은 결국 하늘을 향한 몸짓이 된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를 ‘쥬이상스(Jouissance)’라고 불렀다.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고통을 통과하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기쁨, 지혜가 전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의 방향성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지혜를 구하는 자는 알게 된다. 그 길이 괴롭지만, 그 괴로움 안에 이상하게도 기쁨이 있다는 것을. 그 기쁨은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문제 앞에 멈춰 서 있는 자체에서 비롯된다.
지혜는 결과가 아니라, 태도다.
지혜는 결론이 아니라, 관계다.
하나님을 향한 겸손한 시선이, 우리를 지혜의 사람으로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