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전도서 묵상 2 - ‘해 아래’가 아니라 ‘하나님 아래’에서

  • 관리자
  • 2025-07-04 06:00:00
  • hit258
  • 219.251.41.124

2. ‘해 아래’가 아니라 ‘하나님 아래’에서

“사람이 세상에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는가?”
(전도서 1:3)


전도자가 던지는 질문은 너무나도 날카롭고 직설적이다.

“사람이 세상에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는가?”

이 구절은 전도서의 핵심 문제의식이다.
‘수고’—그것은 인간됨을 구성하는 본질적 행위다.
인간은 창조의 순간부터 노동하는 존재였다. 에덴동산에서도 아담은 땅을 일구고 돌보는 자로 지음 받았다. 수고는 단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자, 자기를 증명하는 행위였다.
그런데 전도자는 바로 그 ‘수고’에 대하여, 보람이 없다고 선언한다. 이 무거운 부정 앞에서 우리는 멈춰 설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세상에서”라는 표현이다.
히브리어 원문은 “תַּחַת הַשָּׁמֶשׁ (tachat ha-shemesh)”, 직역하면 “해 아래에서”이다.
이는 단지 물리적 위치가 아니라, 전도서 전체를 흐르는 상징어다. ‘해 아래’는 곧 하나님 없는 세계, 영원과 단절된 인간의 조건, 죽음이라는 한계를 가진 시간 안의 세계를 의미한다. 전도자는 그 ‘해 아래’에서 인간이 아무리 수고해도 무엇도 남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수고가 참된 목적을 상실한 상태, 혹은 허영과 탐욕을 따라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도자는 노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일까?
수고하는 인간을 비웃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는 우리가 무엇을 향해, 어떤 동기로, 무엇을 위해 수고하고 있는지를 되묻고 있다.

오늘 우리는 때때로 아주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그 열심의 방향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
목적 없는 수고, 의미를 상실한 노동,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이룬 개발, 인간을 기계로 전락시키는 업무 시스템, 효율만을 따지는 평가 체계. 하루 종일 땀을 흘려도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보람 없는 수고다.
전도자는 그런 수고를 고발한다.
바꾸지 않아야 할 것을 바꾸려 하고,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바꾸려는 인간의 탐욕, 자연을 지배하려는 욕망, 시간 위에 서려는 교만, 죽음을 이기려는 허영......이런 수고는 결국 ‘해 아래의 수고’이며,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생명을 짓밟는 수고, 관계를 파괴하는 수고, 공동체를 해체하는 수고는, 아무리 성실해도 보람은커녕 허무를 낳을 뿐이다.

하지만 전도자는 수고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보람 있는 수고”, “의미 있는 노동”이 인간됨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 보람은 단순히 성과나 효율, 돈벌이로 계산되지 않는다.
그것은 삶을 살리는 일, 나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일, 다른 이를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수고 속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그림자 노동(shadow work)’을 감당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그림자 노동이란, 대가 없이 수행하는 수고를 말한다.
가정에서 돌봄을 책임지는 어머니의 노동, 비자발적 자원봉사, 디지털 사회에서 점점 개인에게 전가되는 업무들이다. 이런 노동은 눈에 띄지 않고,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지만,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필수적인 수고들이다. 우리는 이런 보이지 않는 수고를 통해, 인간됨을 지키고, 생명을 보살핀다. 보람은 바로 그런 곳에 있다. 삶의 외면이 아니라, 뿌리를 지탱하는 손길 속에 있다.

전도자는 묻는다.

너의 수고는 보람이 있는가?
그 보람은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너는 무엇을 위해 땀 흘리는가?

그 질문을 회피하지 말자.
그 앞에 서는 것이 곧 지혜의 시작이며,
참된 인간됨을 회복하는 길이다.
그리고 이 질문 앞에 멈추어 설 수 있다면,
우리는 이제 ‘해 아래’가 아닌 ‘하나님 아래’에서 수고하는 사람으로 다시 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 

전도자는 “해 아래 새 것이 없다”(전 1:9)고 절망하지만, 복음은 바로 그 ‘해 아래’에 새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선포한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 이 죄인 살리신 주”라는 찬양의 고백처럼, 우리가 수고 가운데 보람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이유는, 죄로 인해 허무 속에 갇혀 있던 존재를 주께서 다시 살리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수고가 구원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자의 수고는 헛되지 않다.
바로 그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의미 있는 삶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게시글 공유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