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를 열며
헛된 것을 붙잡는 사람들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전 1:2)
전도서는 참 이상한 책이다.
성경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지만, 정통 교리나 구원의 메시지를 분명히 말해주지도 않고, 오히려 믿음 없는 자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을 스스럼없이 던진다.
“모든 것이 헛되다.”
“사람의 수고가 무슨 보람이 있느냐.”
“지혜자도 죽고 어리석은 자도 죽는다.”
차라리 철학자의 고백처럼 들리고, 인생을 오래 살아본 노인의 지친 탄식처럼 들린다. 그런데 바로 그 점에서 전도서는 특별하고, 우리 시대에 절실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히브리어로 ‘코헬렛’(Qohelet)이라 불리는 전도자는, ‘말하는 자’, ‘총회를 소집하는 자’, 혹은 ‘지혜를 가르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대부분의 주석은 그가 솔로몬의 이름 아래 형상화된 인물이라고 보며, 후기 지혜문학의 대표로 간주한다. ‘예루살렘 왕 다윗의 아들’로 소개되는 그는, 인생의 모든 부귀영화와 지혜, 성취를 경험하고도 마침내 그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 고백이 단순한 비관이나 허무주의는 아니다. 그는 헛됨을 말하지만, 그 헛됨을 말하는 데 진심이고, 정직하며, 고통스러울 만큼 투명하다.
전도서의 중심은 바로 이 유명한 문장이다.
“헛되고 헛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1:2) 새번역은 이 반복을 살려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시도했으며, 영어 성경(NIV)에서는 “Meaningless! Meaningless!”로 옮겼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어 ‘헤벨’(הֶבֶל)의 뜻은 단순한 ‘무의미함’을 넘어선다. 그것은 ‘입김’, ‘연기’, ‘안개’와 같은 덧없음을 가리킨다. 금세 사라지고, 손에 잡히지 않으며, 방향도 없이 흩어지는 것—그것이 곧 ‘헛됨’이다.
이처럼 전도자가 말하는 ‘헛됨’은 단순히 인생의 무상함을 읊는 것이 아니다.
그는 ‘헛된 것을 붙잡고 살아가는 인간의 허상’을 꿰뚫는다. 1장 3절은 다시 묻는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남는가?”
‘해 아래에서’라는 표현은 전도서 전체에 걸쳐 반복되며, 인간의 시야가 미치는 모든 세속적 영역을 가리킨다. 이 말은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 없는 세계, 영원과 분리된 인간적 조건 속에서의 모든 노력과 분투를 뜻한다. 전도자는 바로 그 ‘해 아래’의 삶을 천천히, 그러나 예리하게 해부해 나간다.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애쓰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해 수고하며, 더 오래 기억되기 위해 이름을 새긴다. 하지만 전도자는 말한다. 아무리 쌓아도 다 사라지고, 아무리 이름을 남겨도 바람처럼 지워진다고.
호세아 12장 1절은 이런 인간의 실존을 날카롭게 비유한다.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고 살며, 종일 열풍을 따라서 달리고, 거짓말만 하고 폭력만을 일삼는다.”
이 표현은 전도서와 무척 닮았다.
바람을 먹는다는 말은 무언가를 먹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씹지 못하고 삼키지 못하는 삶을 뜻한다. 열풍은 뜨겁고 메마르며, 아무 유익도 주지 않는 바람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무엇인가를 ‘소유한다’고 여기지만 실은 텅 빈 것을 좇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도자는 바로 그 허상의 삶을 해체하려 한다. 그 해체는 우리를 향한 절망의 선언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한 삶으로의 초대다.
전도서를 읽다 보면, 이 책이 어떤 점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예언서’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오늘날 우리는 맘몬의 시대를 살고 있다. 소비가 곧 존재가 되었고, 자산이 정체성을 대변하며, 경쟁과 성취가 곧 인생의 의미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전도자는 묻는다. “네가 그토록 애쓴 그 일의 끝에 과연 무엇이 남았는가?” 그가 보기에 수고는 수고일 뿐이다. 보람은커녕, 끝없는 허무가 되돌아올 뿐이다.
하지만 전도서는 끝내 우리를 허무의 구덩이에 빠뜨려 놓지 않는다.
그는 헛됨의 세계를 직면한 다음, 거기서 조금씩 ‘작은 기쁨의 가능성’을 되짚는다.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해 아래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감사히 여기는 것’(3:13, 5:18, 9:7 등) 말이다. 아무 것도 영원하지 않지만, 바로 그 사실이 우리에게 ‘지금 이 순간’의 의미를 더욱 절실하게 만들어준다.
전도서를 여는 이 첫날,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나는 무엇을 쫓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혹시 바람을 먹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헛된 것을 위해 수고하고, 그 수고로부터 보람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전도서는 말한다.
모든 것은 헛되다.
그러나 그 헛됨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때, 오히려 진실이 시작된다고.
믿음이란,
허무 너머를 보려는 눈을 갖는 것이다.
신앙이란,
바로 그 허무 속에서도 작고 느린 기쁨을 붙드는 용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