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0장-침묵의 고백, 경외의 자리
하나님의 질문이 잠시 멈춘다.
그리고 처음으로 하나님이 욥에게 응답을 요구하신다.
“트집 잡는 사람이 샷다이(전능하신 분)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나무라는 자, 대답해 보아라.”(40:2)
그러나 이 말씀은 책망이 아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욥을 존중하신다.
질문을 멈추셨지만, 욥을 대화의 중심 무대에 세우신다.
욥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말한다.
“보십시오,
보잘것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주님께 뭐라 답하겠습니까?
제 손을 입에 댈 뿐입니다.”(40:4)
이것이 욥의 첫 번째 응답이다.
말을 멈춘 침묵, 그 자체가 고백이다.
이제 욥의 언어는 항변도, 탄식도 아니다.
그의 침묵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자의 떨리는 깨달음이다.
하나님은 다시 폭풍 가운데서 말씀하신다.
그 음성은 천둥 같지만, 그것은 파괴의 소리가 아니라 창조의 숨결이다.
그분은 묻는다.
“네가 나의 정의를 깨뜨리기라도 하려느냐?
너를 의롭다 하려고 나를 악하다 하려느냐?”(40:8)
이것은 정죄가 아니다.
하나님의 자리와 인간의 자리를 묻는 근본적 질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에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의 자리로 내려오셨다.
그러나 인간은 자주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려 한다.
이해하려 하고, 판단하려 하고, 대신하려 한다.
그것이 죄의 원형이고, 오만의 뿌리다.
하나님은 브헤못, 한 들짐승을 묘사하신다.
그 모습은 질서 속의 야성, 하나님의 세계를 상징한다.
“꼬리는 삼나무(백향목)처럼 딱딱하지.
넓적다리 힘줄이 촘촘히 짜여 있지.
뼈가 놋파이프 같고, 뼈대가 쇠막대 같지.”(40:17,18)
이 존재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창조 세계의 거대함,
그리고 하나님 안에만 유지되는 조화와 위엄을 드러낸다.
욥이 느낀 것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외(awe)였다.
공포(fear)는 무너질까 두려워 움츠러드는 감정이다.
그러나 경외는 도달할 수 없는 신비 앞에서의 존재적 겸허함이다.
오늘날 우리는 공포에 익숙하다.
소유하지 못하면 실패한 존재라는 맘몬의 술책,
불안과 비교, 낙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소유하려 한다.
그러나 경외는 무소유의 자리에 선 자만이 느낄 수 있다.
그 자리는 가진 것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비워진 마음으로만 들어설 수 있는 자리다.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매여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1)
그렇다.
끊임없이 소유하는 삶의 양식은 우리의 삶을 두려움과 공포 속으로 내몬다.
맘몬의 속성은 옭아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옭아매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게 하는 것,
그래서 삶에서 만나는 신비의 경외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
그 헛헛함을 포장하기 위해 이런저런 말의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평안도 없다.
침묵은 단지 말이 없음이 아니다.
침묵은 존재가 가볍지 않음을 아는 자의 행위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 은 말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침묵해야 한다.”2)
욥은 단지 말할 수 없어서 침묵한 것이 아니다.
말하려는 욕망조차 내려놓은 자의 고요함이다.
침묵은 두려움의 도피가 아니다.
침묵은 오히려 다 이해할 수 없음에서 오는 안도의 언어다.
내가 신이 아님을 인정하는 순간,
세상살이는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평화가 찾아온다.
하나님은 폭풍 중에서도 말씀하시고, 때론 세미한 중에도 말씀하신다.
우리는 평안을 고요함 속에서만 찾으려 하지만,
참 평안은 폭풍 속에서도 주어지고, 침묵은 소음 속에서도 깃든다.
이것이 믿음의 신비다.
욥은 그 신비 앞에서 더 이상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는 이해를 멈추고, 신비에 머무는 자가 되었다.
욥의 고백은 침묵이다.
그 침묵은, 신비 앞에서 떨리는 경외의 말 없는 언어다.
우리 삶에,
말 대신 침묵으로 하나님 앞에 선 마지막 순간은 언제였는가?
주:
[1] 법정, 『무소유』, 범우사, 1999, P.24.
[2]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제7명제.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ss man schweig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