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와스디와 에스더 사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

  • 관리자
  • 2025-05-03 0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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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기에는 서로 다른 두 여인이 나란히 등장한다.
한 여인은 왕의 명령을 거절했고, 다른 여인은 왕의 명령에 순응했다.
하나는 이름 없이 사라졌고, 하나는 영웅으로 남았다.
그러나 이 단순한 구도 너머에는 더 깊고 풍성한 이야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진실이 있다.

에스더기 1장에서 등장하는 와스디 왕후는 아하수에로 왕의 잔칫날, 왕의 부름을 거절한다.
왕은 와스디의 아름다움을 대신들과 백성들에게 자랑하려 했다. 일종의 전시였다.
여성을 권력자의 소유물로 다루는 고대의 통념은, 그녀의 이름을 호출하며 연회장으로 끌어오려 했다.
그러나 와스디는 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변명도, 항변도, 설득도 없었다. 다만 ‘거절’했다.

그리고 성경은 간단히 말한다.
“왕후 와스디는 오지 아니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붙는 듯하더라.” (에스더 1:12)
그녀의 거절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
그것은 여성의 몸이 권력의 눈요깃감이 되는 것을 부정하는 행위였다.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 자기 존재에 대한 존엄을 지키려는 말 없는 저항이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여인의 ‘거절’은 체제를 흔들 수 있는 불안 요소였다.
왕의 분노는 곧 정치적 위기감으로 번졌고,
대신들은 “모든 여인들이 남편을 멸시할까 두렵다”며 법령을 통해 와스디를 폐위시킨다.

그리고 그녀는 성경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사라진다.
그러나 와스디는 이름 없는 많은 여성들의 상징이자,
자기 주체를 잃지 않으려는 인간 존재의 한 표상이다.

한편, 에스더는 이후 왕후가 된다.
처음엔 체제에 순응하고, 왕의 눈에 들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다.
하지만 민족의 위기 앞에서 그녀는 담대하게 말한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그녀는 후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용기 있는 선택으로 유다 민족을 구원한다.
에스더는 ‘때에 맞는 순응’을 통해 체제 안에서 발언의 길을 찾은 여인이었다.

이 두 여인은 모두 위대하다.
한 여인은 체제에 들어가 그 안에서 변화의 씨앗을 심었고,
다른 여인은 체제의 초대 자체를 거부하며 침묵으로 저항했다.
우리는 자주 에스더의 용기만을 배우려 한다.
하지만 와스디의 거절에서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만나게 된다.

“나는 어디까지 순응하고, 어디서부터 거절할 것인가?”

교회든, 사회든, 가정이든, 여성뿐 아니라 모든 인간은 때때로 말하지 않는 용기,
거절할 수 있는 힘, 사라질 각오로 존엄을 지키는 신앙을 배워야 한다.

와스디는 왕후의 자리를 내려놓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권좌를 잃었지만, 존재의 품격은 끝내 지켜냈다.
에스더의 순응과 와스디의 거절 사이,
그 좁고도 깊은 틈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오늘 누구의 부름에 응답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나 자신을 지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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