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영글도록 명하시고
그들을 완성시켜 주시고,
마지막 단 맛이 짙은 포도송이 속에 스미게 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햇빛을 주시어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오랫동안 외롭게 살아가면서
잠 못 이루어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리하여 낙엽 뒹구는 가로수 길을
불안스레 이리저리 헤맬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가을 날’ 전문)
가을이면 생각나는 릴케의 시 ‘가을 날’입니다.
저는 ‘때’가 되었다는 자각과 ‘지난 계절의 위대함’을 노래하는 두 구절을 좋아합니다.
자신이 사는 때가 어떤 때인지를 자각하고 과거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사람,
그는 성숙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불안스레 이리저리 헤매며’살아갑니다.
왜냐하면,
‘불안’은 인간의 깊은 내면에 자리한 것이기 때문에 성숙한 사람이라도 그 감정을 어쩌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그 불안에 넘어지지 않고, 그 불안을 디딤돌로 삼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 심층에 자리하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러므로 ‘불안’은 떨쳐버려야 할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보게 하는 긍정적인 감정인 것입니다.
조금 불안해하며 낙엽 뒹구는 가로수 길을 걷는 시간이라도 인생은 충분히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