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허정윤 권사님’이 직접 쓰고 만들어주신 액자가 거실에 있다.
요한3서 1장 2절의 말씀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제대로 섰으니 범사에 감사할 것이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두려움 없을 것이니 강건할 것이다.
영혼이 잘 되려면 불평과 불만을 내려놓고 감사하는 삶으로 나아가야하는데,
혼자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니 성령의 도우심을 구할 수밖에 없고,
성령의 구하심을 바라니 성령 안에 거하게 되고,
성령 안에 거하는 이들은 예수 안에 거하게 된다.
예수 안에 거하는 증거는 이웃에게로 가는 것이고, 이웃사랑을 통해서 하나님 사랑에 이른다.
예수 안에(in), 이웃에게로(to), 이웃을 통하여(through)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렇다.
하나님이 부재하는 것처럼 내 몸이 아프지만, ’없이 계시는 분‘이시니 모든 것이 감사하다.
감사는 영혼을 맑게 하는 정화수다.
오늘 첫 번째 감사는 오늘을 당연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경이로 감사로 맞이하며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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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계시는 분‘은 동방의 성인으로 불리는 다석 류영모 선생의 고백입니다.
불의한 현실이나 고난의 삶에 처하게 되면 마치 하나님은 부재하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때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뤄가고 계시는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살다 보면 ’하나님의 침묵과 부재‘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엘리 위젤은 <나이트(흑암)>이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있는가?’ 그때 내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여기 교수대에 매달려 있지.’”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없이 계시는 분,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