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호승 시인의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라는 제목의 시(詩)가 있는 산문집에는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있어야 한다’는 글이 있습니다. 시인은 수의는 망자(亡者)의 옷이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예의와 품위를 지켜주는 소중한 옷이라고 정의합니다. 시인은 종종 자신은 어떤 수의를 입을 것인지를 생각한다고 합니다.
세상 모든 옷에는 대부분 주머니가 있지만,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망자의 옷이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위인들도 죽을 때에는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으므로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자기가 입을 수의에는 주머니가 두 개는 있어야 하며, 그 주머니에 꼭 넣어가야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한 개의 주머니에는 살아오면서 남에게 받은 사랑, 또 하나의 주머니에는 ‘용서- 받은 것과 해야 할 것-’를 담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사랑과 용서’를 넣는 두 개의 주머니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기독교는 사랑과 용서의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던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용서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증명될 수 있습니다. 그의 계명 중 ‘용서’에 대한 계명은 일곱 번을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용서’라고하면 타인을 떠올리지만, 저는 먼저 자신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서 안 되는 자신의 모습’을 용서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웃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가 변해야 남이 변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정호승 시인의 ‘수의(壽衣)’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원래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지만
그동안 내가 받은 사랑을
양쪽 주머니에 듬뿍 넣어 갈 것이다
내가 용서하지 못한 용서는 물론이고
나를 용서해야 할 사람이
용서하지 못한 용서도 넣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