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십시오

  • 관리자
  • 2024-03-2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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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가난하고 억눌린 자와 병자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과 고통 받는 사람들의 친구였고, 이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데 만날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에게 영성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사람들 사이에 그분이 앉아계실 것이니 그곳으로 가라.’고 권면합니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장단(臟斷)의 연민으로 한없는 사랑과 자비를 베푸시던 예수님, 그러나 종교지도자들과 기득권자들에게는 엄격하셨습니다. 기득권자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그토록 엄격하셨던 이유는, 그들이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까지도 아예 닫아버리고는 자신들도 들어가려하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들마저 막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의롭게 보였지만, 예수님이 보실 때에는 위선자, 눈먼 길잡이, 독사의 자식들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기득권자들은 예수님을 없애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롭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도 이런 일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하고 계시는 이들은 교회에 발붙일 자리가 없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워 차별하고 혐오합니다.
게다가 소위 교계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이들과 교계는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자리까지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리고 있습니다.
2024년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빌라도의 법정에 선다면 여전히 “우리는 바라바를 원한다!”고 할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고난주간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는지, 그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별칭인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묵상하십시오. 우리가 제대로 눈을 뜨지 않으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소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면 우리 곁에 현존하시는 예수님도 만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을 묵상하신 후 맞이하는 부활주일 아침을 맞이하십시오.
부활의 영광은 십자가 고난이라는 ‘통과제의’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것은 곧 주님의 부활을 묵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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