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통과제의의 시간

  • 관리자
  • 2024-02-1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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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페르시아의 수피 시인 잘랏 앗딘 루미는 상처는 빛이 당신에게 진입하는 통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칠흑 같은 동굴에 작은 틈으로 스며드는 빛이 출구를 향한 희망이듯,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경험과는 다른 경계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이것을 통과제의라고 합니다. ‘통과제의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은 내가 상상하고 준비한 것을 무력화시켜 깊은 고난으로 내몹니다. 그러나 통과제의의 시간을 잘 견뎌낸 사람만이 거듭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에게 고난은 기회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고난의 순간에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통로인 것을 어렴풋이 압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이 전부인 줄로 압니다. 인간에 대한 수많은 정의 중에서 호모 파수스(Homo passus)’, 고통을 감수하는 인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심오한 고통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자신의 삶을 선명하게 바라보고 반응할 수있게 합니다. 또한, 과거에 집착하던 군더더기를 덜어낼 수 있게도 합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진짜 자기를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솜털로 가득한 목련의 꽃눈이 겨우내 껍질을 하나씩 벗어내는 계절입니다. 이 꽃눈은 지난 봄, 꽃이 진 후에 생기기 시작한 것이고, 마침내 겨울이 되면 본격적으로 꽃눈의 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며 성장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4월 어는 봄날에 활짝 피어나는 것입니다. 고작 사나흘 피어나기 위해 360일을 헌신하는 목련, 그리고 끊임없이 꽃눈을 떨구는 통과제의의 시간을 감내하는 인내가 거듭남의 거듭남을 통해 꽃을 피우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과 아픔이라는 잔인하지만, 필수불가결한 통과제의의 시간을 거쳐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로 나가신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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