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꽃 41 /좀씀바귀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5:3-4)
우리가 식용하는 나물 중에는 ‘쓴 나물’이 있습니다.
고들빼기류의 나물들과 씀바귀류의 나물들이 그것인데 쓴 나물은 입맛을 좋게 하고 소화제나 위를 튼튼하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씀바귀는 ‘좀씀바귀’입니다.
식물의 이름에 ‘좀’자가 붙은 경우는 키가 작을 때 주로 붙여집니다.
그러나 비록 키는 작아도 꽃의 모양새와 크기는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음으로 인해서 더 아름답게 느껴지고,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저는 꽃을 볼 때마다, 그 속에 들어있는 고난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꽃들이 그렇겠지만 어쩌면 겨울이라는 시간, 땅 속에 묻혀 있는 시간, 꽃을 피우기까지 비바람에 흔들리는 시간, 때로는 아주 짧은 순간 꽃을 피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고와 노력이 깃들어 있는지를 생각하면 작은 꽃 한 송이를 통해서도 큰 위로를 받습니다.
저 들녘에 보아주는 이 없어도 그 곳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피어나는 들꽃들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이유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보아주는 이 없어도 묵묵히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 그러한 삶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소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인생의 쓴 맛’을 처절하게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아픔의 깊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은 이웃 사랑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고, 결국 하나님 사람과도 먼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또한, 꽃을 보면, 작고 연약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남들 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비록 작고 연약하더라도 주어진 상황에서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꽃을 좋아하지만, 온실에서 자란 화사한 꽃들보다는 작고 못생겨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꽃들에게 더 많은 정을 줍니다. 그러다 보니 못생긴 꽃들이 더 예뻐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쓴 나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씀바귀나물을 먹다보면 맨 처음에는 쓰지만 나중에는 입안에 단 맛이 가득 고이게 됩니다. 쓴맛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 맛도 간직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죠. 그렇습니다. 고난 속에는 소망이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는 부활이라는 소망이 들어 있었고, 그 소망은 현실이 되어 우리들에게까지 그 소망이 다다랐습니다.
그 소망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며 자신과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더 풍성하게 만들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
영상보기https://youtu.be/L8pYFSC4Q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