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꽃 묵상 026 / 풍년화
[마태복음서 16:3]
아침에는 '하늘이 붉고 흐린 것을 보니 오늘은 날씨가 궂겠구나' 한다.
너희는 하늘의 징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들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법정 스님은 <일기일회>에서 봄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봄을 이루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들은 봄이 오면 꽃이 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봄이 오게 됩니다.’(<일기일회> 중에서)
풍년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면 풍년이라고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과 대화하는 법을 알았고,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농사를 예측했습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면서,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면서 ‘올해는 풍년 혹은 흉년’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미신인 듯 보이지만, 자연의 흐름을 가만히 살펴보면 앞으로 일어날 징조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눈들이 흐려졌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자연의 진리를 보는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생태감수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지구생태계는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와 이에 따른 지구의 사막화, 수온의 상승과 멸종동식물들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인류에게 지금의 삶의 방식을 돌이켜야 한다는 사인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그런 징조를 무시했고, 그 결과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을 맞이했습니다. 이제라도 돌이키면 좋겠는데, 당장 눈앞에 보이는 위기를 모면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인류의 삶을 근원적으로 돌이키지 않으면 인류 역사의 봄은 요원할 것입니다.
이 땅에 봄이 오려면, 맘몬 중심의 경제체제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나 혼자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경쟁구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번 코로나사태를 통해서 인류는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더블어함께 사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불가피하게 엮어있음을 인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범지구적인 차원의 문제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일이라도 결국, 한 사람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나의 변화, 그것이 무슨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인지 의심하지 마시고, 나의 변화를 이뤄내십시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봄이 온다는 이야기가 틀리지 않다고 생각된다면,
나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피워내십시오.
내 삶을 제대로 피워내면,
내 곁에 또 누군가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삶을 피워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송이 두 송이 피어나다보면 꽃동산이 되듯, 인류의 역사도 봄을 다시 피워낼 것입니다.
그 시작은 바로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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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LdJ4wHsZ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