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꽃 021 / 새끼노루귀
[마태복음서 11:25]
그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고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
‘눈 속의 어린 사슴, 봄소식’이라는 꽃말을 가진 꽃이 있습니다.
노루귀가 그 주인공인데, 이파리의 모양이 쫑긋거리는 노루의 귀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노루귀의 꽃은 아이보리색, 하얀색, 분홍색, 청색으로 피어납니다. 그래도 다 같은 노루귀인데, 제주도에서 피어나는 노루귀는 특별히 ‘새끼노루귀’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왜 그들의 이름이 새끼노루귀인지는 육지에 피어난 노루귀를 만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도에서 피어나는 새끼노루귀는 육지에 피어난 것보다 꽃도 이파리도 작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작아서 더 예쁘고 단단해 보입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습니다.
단순히 작아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작아도 그 안에 온전한 생명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기울어지면, 온전한 생명을 가진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마음이 기울어졌으므로 타자를 불완전한 존재로 인식하는 순간부터 다르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 틀리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타자뿐 아니라 자신도 죽이는 길을 가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어떤 이념이나 심지어는 종교에서 있어서도 근본주의에 빠지게 되면 그 안에 폭력성을 배태하게 됩니다.
그 폭력성이 드러나면서 먼저 이웃을 죽이고,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죽이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떠돌고 있는 온갖 폭력적인 근원에는 ‘나만 옳다’는 근본주의적인 생각, 기울어진 생각에 있습니다.
삶의 지혜는 이 세상에서 살아간 시간과 비례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지혜를 얻기 위해서 힘쓰고, 얻은 지혜를 삶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만이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엄밀하게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의 도우심이 함께해야 합니다.
대자의 지혜는, 똑똑한 사람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들 같은, 이 땅의 작고 연약한 존재들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참된 지혜를 얻게 되면 비로소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입니다. 그리고 참된 덕은 ‘무위’에 있다고 노자는 말합니다.
여러분, 누구도 완벽할 수 없듯이 나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완벽하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지혜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작아도 됩니다.
눈 속의 어린 사슴, 새끼노루귀가 봄소식을 알리는 계절이 왔습니다.
봄소식이 겨울 같았던 우리의 마음에도 봄을 피워내길 바라며 하루를 엽니다.
영상보기
https://youtu.be/kDvvlk3yKw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