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꽃 019 / 돌단풍
[시편 27:1]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코로나19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겨울은 제 철을 위해 힘쓰는 것뿐인데 유독 겨울이 길어 보이는 것은 코로나블루로 인해 그만큼 지쳐있기도 한 탓이겠지요. 이럴수록 강인한 생명력으로 버텨내야 할 것입니다.
‘강인한 생명력’이라는 꽃말을 가진 꽃이 있습니다.
돌단풍이 그 주인공인데, 이름답게 돌 틈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납니다.
이파리는 단풍나무 이파리를 닮았고, 늦가을에 곱게 드는 단풍은 참 아름답습니다.
돌단풍의 존재를 처음 안 것은 아주 어릴 적입니다.
분재를 좋아하시는 친척분이 뜰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놓고 돌 틈에 돌단풍을 심어두었습니다.
이름은 알지 못했지만, 돌 틈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을 통해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어머니가 몇 뿌리 얻어 집 화단에도 심었는데, 바위틈이 아니라도 아주 잘 자랐습니다.
아니, 바위틈보다는 더 실하게 자랐지요. 이파리도 더 크고 꽃도 더 컸습니다.
그런데 돌 틈에서 자라는 것보다 더 실하게 자라니 돌단풍의 매력도 덜했습니다.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는 돌단풍이었는데, 청소년시절 친구들과 계곡으로 캠핑을 갔다가 바위 틈에 피어있는 돌단풍을 만났습니다. 참 아름다웠습니다. 자연은 그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렇게 돌단풍은 관상용인줄로만 알았는데, 어느 날 어머님이 맛있는 나물을 만드셨습니다.
돌단풍의 연한 이파리를 데쳐서 무친 나물이었습니다. 나물이라면 다 좋아하지만, 돌 틈에서 애써 피어난 돌단풍을 나물로 먹는 것이 미안해서 지금은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애쓰지 않고 피어나는 생명은 없지요.
이런 경험들은 저의 생태감수성을 키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살기 위해서 먹어야만 하는 인간이지만, 다른 생명의 죽음을 통해 생명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우리의 먹을거리가 되는 것은 그 무엇이든지 간에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몸에 모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미식을 위해서 먹는 것도 삼가야 할 것입니다.
돌 틈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돌단풍, 그들이 코로나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절망하지 말고 버티십시오. 버티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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