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꽃 018 / 꽃다지
[마태복음 6:26]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암울했던 80년대에 많이 불렀던 꽃다지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
나 오늘밤 캄캄한 창살 아래 몸 뒤척일 힘조차 없어라~’
겨울입니다.
겨울은 고난의 상징입니다.
추운 겨울을 나는 꽃다지는 로제트형으로 땅에 온 몸을 바짝 붙이고, 조금이라도 햇볕을 더 받으려고 이파리를 꽃처럼 활짝 벌리고 있습니다. 추위와 맞서느라 이파리는 온통 붉은 빛으로 상기되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작은 이파리마다 솜털이 무성합니다. 그래도 동토의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시련이었을까요.
겨울을 온 몸에 새긴 꽃다지, 그러니 봄이 오면 꽃샘추위도 무서워하지 않고 양지바른 곳에서 앞 다퉈 피어나는 것입니다. 앞 다퉈 피어나되 그들은 홀로 피어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작습니다.
홀로 피어있으면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아도 꽃이라고 보기에는 차마 작은 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리지어 피어나면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노랗게 물든 들판을 보면서 “와! 봄이 왔구나!”합니다.
무슨 꽃인지 몰라도 말입니다.
우리 사회는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보고, 인정하는데 인색합니다.
지극히 큰 것, 물질 중심적이라서 작은 것들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큰 것들의 등살과 폭력에 작고 약한 것들은 자꾸만 주변부로 밀려납니다. 그러다가 아예 사라지기도 하지요.
그런 일들이 반복되고 광범위해지다 보니 결국 부메랑이 되어 큰 것도 무너집니다.
자기만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다가 모두 함께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지요.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 작은 씨앗이 싹트는 순간을 본 사람, 작은 꽃다지가 피어나는 것을 보며 봄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다를 것이라 확신을 합니다.
저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을 바라보는 눈이 아주 각별하신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하는 말씀이나 ‘씨 뿌리는 자’의 비유 같은 생명의 말씀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바라보며 묵상한 이들만이 체득할 수 있는 언어, 그것이 예수님의 언어요, 삶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작은 자들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지만 이제 곧 봄이 올 것입니다.
봄맞이할 준비를 하십시오. 그 준비는 우리 주변의 작은 것들을 바라보는 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올해 봄에는 양지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 피어나는 꽃다지의 신비를 바라볼 수 있는 따스한 마음으로 봄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동영상보기
https://youtu.be/B_VBjzbhXH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