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칼럼

말씀과 꽃 012 / 갯무

  • 관리자
  • 2021-01-1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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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꽃 012 / 갯무

[갈라디아서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
오늘은 바람 따라 자유의 삶을 사는 ‘갯무’를 묵상하겠습니다.
제주도의 해안가나 길가, 밭과 길의 경계를 이룬 돌담의 길가를 따라 피어있는 보랏빛이나 흰색이 감도는 꽃입니다.
제주에서는 양지바른 곳에서는 겨울에도 그 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생명력이 뛰어납니다. 
 

갯무는 원래 농작물인 무우에 그 뿌리가 있다고 합니다. 씨앗들이 바람에 날리면서 밭의 경계선 바깥으로 그들을 옮겼고,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서 지금도 여전히 밭에서 가꿔지는 무와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자유의 바람을 타고 그들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을 그들의 삶의 영역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갯무는 뿌리와 잎을 모두 식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맛은 무우와 같지는 않겠지만, 그 쓰임새는 무우처럼 해수, 소화제, 기관지염 등에 약으로 쓴다고 합니다. 그 모양은 변했지만 꽃은 더 예쁜 색을 간직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그 본성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한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렵기 때문에 그 길을 피해서 다른 길로 가고' 어떤 이는 ‘어렵기 때문에 더 열심히 그 길을 간다'고 합니다. 어떤 것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갯무의 경우는 후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도 가끔은 바람처럼 자유로이 살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그러한 꿈들이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번번이 좌절됩니다. 그렇다고 현실과 바람, 그 간극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의미 없는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의 삶에 급급하느라 자기의 바람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의미를 잃어버린 삶인게지요. 
 

삶의 알짬이란, 현실에 안주하는 삶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삶의 향기가 되는 것이지요. 향기를 가진 삶, 자기만의 향기를 가진 사람, 그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무언가의 가치를 말할 때 우리는 경제논리로만 말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맘몬적인 사고방식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어서 이 논리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처럼 취급당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물질이라는 우상숭배에 빠져 살아가는 인간들의 우매함을 드러내는 논리일뿐입니다. 
 

식용적인 가치로만 본다면 갯무는 그다지 환영받을 만한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꽃의 아름다움을 보는 이들이라면 오히려 사람들의 손에 길들여진 무가 간직한 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별 볼일 없는 꽃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존재인 것이지요. 무언가를 바라볼 때, 어떤 눈으로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또 한가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지 마십시오. 자기를 살아가십시오.*

 

동영상보기
https://youtu.be/Fq02s7jmn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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