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여섯째주일(20231008)
인생의 전반부
로마서 3:27~31

■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
리처드 로어와 함께 하는 종교개혁의 달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주에는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단순히 나이에 따른 구분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의 후반부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누구에게나 인생의 후반부는 옵니다. 여행 기간에 따라 짐의 크기가 달라지는 것처럼, 인생의 후반부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인생 전반부의 삶을 다르게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인생의 전반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인생의 전반전과 후반전은 나이로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인생의 후반부가 온다고 할 때, 최소한 오십대 후반부터는 원하지 않아도 인생의 후반기를 살아가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생의 전반부’를 제대로 살지 못한 이들이 원로가 되면 그들뿐 아니라 그들이 속해있는 공동체가 함께 미성숙의 혼란한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인생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있다. 설익은 전반부 인생을 산 미성숙한 이들이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면, 그도 공동체도 불행해진다.’
아픔, 몰락, 넘어짐, 실패 같은 것은 누구나 피하고 싶은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이 없는 것이 복된 삶이 아닙니다.
성숙한 삶의 기초에는 필요한 아픔, 필요한 몰락, 필요한 넘어짐, 필요한 실패가 있는 법입니다. 넘어져본 사람만이 넘어졌다가 일어서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조금의 아픔, 넘어짐, 실패를 격지 않게 하는 것은 그의 삶을 돕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삶을 망치는 일입니다.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 것보다 일어서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더 힘든 법입니다. 자녀 사랑을 지혜롭게 하십시오.
인생의 전반부를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아온 사람, 한 번도 넘어져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그러다보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생각에 머물러 자기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기와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이 교육가가 되고 성직자가 되고 정치 지도자가 되면 공동체가 불행해집니다. 하지만, 필요한 넘어짐을 잘 극복한 사람은 ‘이것도 저것도’포용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원로가 되어야 성숙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넘어짐과 일어섬, 이것과 저것이 한 짝인 것처럼 ‘보수신앙과 진보신앙’은 한 짝입니다.
역설적인 것 같지만, 우리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버리려면 더 강한 이기주의자가 되어야합니다. 내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를 알아야 다른 이들도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별 볼일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규범을 벗어던지려면 더 엄격하게 규범을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소위 진보신앙은 신앙의 자유와 바리새주의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다 주일성수, 헌금, 헌신, 부흥 등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소위 보수신앙은 문자에 갇혀서 예언자적인 선포와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렸습니다. 사실, 보수와 진보는 한 쌍입니다. 참된 진보는 전통에 머물지 않지만 전통을 무시하지 않고, 참된 보수는 전통을 존중하지만 개혁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짜 진보와 가짜 보수가 판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보신앙과 보수신앙의 장점을 이어가고 단점을 극복할 때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전거가 앞으로 달리려면 균형을 잡아야 하고, 스케이트를 타고 가고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에 좌우로 밀어야하듯 보수신앙과 진보신앙은 우리 신앙의 좌우의 날개가 되어야 합니다.
삶은 내리막길과 오르막길, 넘어짐과 일어섬, 상실과 회복이라는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룰 때 삶의 성숙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앙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파스카의 신비, 유월절의 신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넘어감의 신비’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은 파스카를 일상의 언어로 표현한 명문입니다.
종교적으로는 율법과 은혜 사이, 정치적으로는 진보와 보수 사이, 삶에서는 상실과 회복사이에서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품을 수 있는 이들이 많은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불어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은 같은 것들끼리 모여 획일적인 삶을 살아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서로를 빛나게 하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파스카, 유월절의 신비를 간직하고 사는 이들은 차별과 혐오와 증오라는 죄에 빠져 살지 않습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 지혜를 갖지 못하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일에 앞장설 수도 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로마서의 말씀을 묵상하겠습니다.
바울의 신학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이신득의’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은혜입니다. 율법조문에 따르면 누구도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율법조문에 따르면, 예수님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울신학의 큰 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이까지도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다 율법을 다 버린 것입니다. 율법 조문을 다 버린 신앙, 아무런 규범이 없는 신앙, 그러다 보니 껍데기 신앙만 남았습니다. 뭔가 신앙의 ‘걸림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습니다. 그러니 넘어질 일도 없고, 넘어져보질 않았으니 신앙의 성숙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율법에 얽매이면 바리새인이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큰 아들처럼 충직한 일꾼으로 살아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이나 탕자처럼 은혜를 입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율법과 자유는 한 짝입니다. 보수적인 신앙과 진보적인 신앙,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균형을 이뤄야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울이 믿음의 법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랑하지 못하게 함’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율법을 지켰다거나 신앙의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얻었다고 자랑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나 할례를 받지 않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인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율법’의 벽을 넘어서야만 했기 때문에 ‘오직 믿음의 법’을 강조한 것입니다. 유대인의 하나님을 넘어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는 분, 할례자뿐 아니라 무할례자의 하나님도 되려면 ‘율법’에 묶어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바울은 ‘믿음의 법’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31절 말씀을 주목하여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폐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 이것이 문자로 기록된 율법의 근본정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3장 6절에서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새 언약, 영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므로 율법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강화하는 것, 그것이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는 것’이니, 율법과 믿음의 법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인생의 전반부’입니다.
인생은 전반부와 후반부가 있습니다.
인생의 후반부가 있음을 알고 인생의 전반부를 살아가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나 ‘필요한 넘어짐’의 과정이 있습니다. 특별히 인생의 후반기를 살아갈 때, 내리막길에서도 기꺼이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려면 ‘넘어짐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생의 후반부를 성숙한 삶으로 이끄는 인생의 전반부를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분들은 인생의 전반부를 살아가는 후배들을 응원하고 축복하는 삶을 사십시오.
[거둠 기도]

창세전에 우리를 향한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 우리에게 후반부 인생이 있음을 자각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삶의 성숙을 위해 필요한 넘어짐과 실패와 좌절의 순간이 있음을 알게 하시고, 이 또한 지나갈 것임을 믿고 늘 힘차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편협한 생각을 넘어, 이것도 저것도 볼 줄 하는 지혜를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