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절 다섯째주일(20231001)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
마태복음 4:18~22

시월의 첫날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 정문에 마르틴 루터가 95개 논제를 게시했고, 이것으로부터 종교 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교회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종교개혁의 기치를 시대의 정신으로 내걸었지만, 2019년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으로 인해 동력을 상실했고, 팬데믹 이후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합니다만, 저는 ‘신앙인들이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들어가는 입구에는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잘 알려진 ‘소설가 염상섭’의 동상과 ‘책은 사람이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문구가 적힌 석각작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저는, 성숙한 신앙을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개인의 부단한 노력과 하나님의 도우심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설교나 설서통독이나 묵상도 도움을 주긴 하지만,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021년부터 시월은 ‘종교개혁의 달’로 삼고, 신앙의 본질을 잘 알려주는 신학자와 관련된 도서를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본회퍼, 2022년에는 월터 부르그만, 올해는 ‘리처드 로어와 함께 하는 종교개혁의 달’입니다.
1943년생인 리처드 로어는 미국의 대표적인 영적지도자로 불리고 있으며, 프란체스코회 사제로 ‘행동과 묵상센터’창립자이자 소장입니다. 1961년 프란체스코 수도회에 입회한 후, 20여 권의 저서를 통해서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성 프란체스코의 평화주의와 신비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번 종교개혁의 달 주 교재인 『위쪽으로 떨어지다』는 그의 대표작으로 아마존 베스트셀러로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독서의 계절입니다.
리처드 로어의 책을 구입하셔서 묵상하신다면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의 책이 어렵긴 하지만, 성서보다는 쉽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입니다.
운동경기의 전반전과 후반전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전반부를 사신다고 생각하십니까, 후반부를 사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종교개혁의 달 포스터를 SNS에 올렸더니 어느 목사님이 ‘인생은 60부터입니다.’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그러나 로어가 이야기하는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나이에 따른 구분’이 아닙니다. 로어는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십대 초반에도 인생의 후반부를 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어 1세기 가깝도록 살아도 인생의 전반부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늙지 않는 사람은 없건만 모두가 그 길을 가는 건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게다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생의 후반부’가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후반부가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니 인생 전반부에 힘을 다 소진해서 인생의 후반부를 제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전반부에 자신의 인생을 잘 달련시켜서, 인생의 전반부에 비하면 훨씬 더 환상적인 여정이 펼쳐지는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에는 전반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후반부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후반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준비도 다르게 할 것이고, 준비를 잘하면 다가오는 후반부도 더 잘 맞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은 ‘짐을 싸는 일’부터 시작됩니다. 2박 3일인지, 한 달인지, 일 년인지 기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짐을 준비해야 합니다. 만일, 산악트레킹을 할 예정이라면, 반드시 사전에 준비 운동으로 단련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니 인생에도 후반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인생의 전반부를 다르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후반부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로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기 영혼’을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고, 하나님께서 영혼을 창조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선하게 창조하셨으며, 창세 전에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 자기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 이것이 ‘자기 영혼’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자기 영혼을 발견하게 되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하고, 위대한 존재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이웃의 삶도 존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창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영혼을 성숙시키는 임무는 각자에게 주어졌고, 자신의 영혼을 성숙시키고자 하는 이들을 도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종교적인 용어로 ‘회개와 은총’이라고 합니다. ‘하늘에 감추어져 있는 보물을 발견하는 일(골 3:3)’은 근원적인 삶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요, 그것은 곧 자기 영혼을 자신이 발견하는 일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온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귀한 뜻을 세우시고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은 선합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그분의 작품이요, 그분의 선한 뜻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어에 따르면, 인생의 전반부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는 단계까지입니다. 이런 과정을 컨테이너를 짓는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인생의 후반부는 그 컨테이너에 담을 내용물을 찾아 배열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세계화된 우리의 문화의 주된 관심은 성공적으로 살아남는 데 주된 관심을 두는 ‘전반부 인생’의 문화 속에 살아간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힘을 다 쏟아버리고 나니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갈 여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명심해야할 것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후반부’는 오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자기 힘만으로 이런 저런 것을 선택하여 ‘영적인 성숙의 경지’에 다다를 수는 없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를 강조(요 14:16)하고 있으며, 히브리서에서는 ‘우리를 위하여 중재의 간구를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히 7:25)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총에 기대어 살아가기로 결단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아브람처럼 ‘길 떠난 사람’(창 12:1)입니다. “떠나라!”고 하실 때 기꺼이 순종하는 사람,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의 신비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은총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결단과 순종으로 우리는 인생의 후반부를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부르실 때, 그들은 그물과 배와 심지어는 가족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물고기를 잡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니다. 이제 그들은 그물을 깁고 고기를 잡으며 연명하던 전반부 인생에서 벗어나 후반부 인생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과 함께 했던 3년은 인생 후반부를 살기 위한 훈련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순간 그들에게 ‘인생의 후반부’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인생의 전반부’를 잘 살아가시길 기도합니다. 하지만, 거가에 매몰되지 않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기꺼이 주님께서 “나를 따라오라”고 하실 때에 순종하여 인생의 전반부와는 비교할 수 없이 황홀한 인생의 후반기를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부르실 때에 그들은 그물도 배도 아버지까지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때부터 인생의 후반부가 시작된 것인데, 이때부터는 자기의 힘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후반부가 있음을 알고, 순종하게 되면 외부로부터 오는 힘에 의해서 살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외부의 힘이 작용하게 되는 힘이 우리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그 힘은 바로 ‘순종’하고, 그 분의 선하신 뜻이 이뤄지길 ‘인내’하며 ‘소망’하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개인적으로 저의 인생후반기의 본격적인 시작은 1995년 11월, 목사안수를 받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전반기’도 만만치 않았지만, ‘인생의 후반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 길이 교차되었습니다. 그런데 상실, 몰락, 실패 같은 것들이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제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고,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내리막길을 피하고 무조건 오르막길만 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파스카, 유월절의 신비, 넘어가는 신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내리막길을 통해 오르막길에 우리를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내리막길에 서 본 사람들만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러니 내리막길에 서 있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십시오. 저 내리막길을 걸으셨지만,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사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우리가 오르막길만 오르길 원한다면, 그 길에 선 것이 아니라 잘못된 궤도(길)에 선 것입니다.
인생 후반부를 살아간다는 것은 그 길에 바로 서서 걸어가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어느 시기를 살고 계십니까? 그 황홀하고 신비한 인생의 후반기를 살아가는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기도]

“나를 따르라!” 말씀하시는 주님,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어 인생은 전반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후반부도 있음을 알게 하옵소서. 인생의 전반부에 매몰되어 신비스럽고 황홀한 인생의 후반기를 상실하지 않게 하소서, 순종하고 결단할 때, 우리 삶을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내리막길도 복으로 바꿔주시는 하나님의 은총 안에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