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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13주] 기도할 수 있는 특권(ppt음성설교포함)

  • 관리자
  • 2023-08-2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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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열세번째 주일(20230827)
기도할 수 있는 특권
누가복음 11:1~4


지난 8월 중순에는 제가 아는 지인의 아내가 암 투병을 하다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남편은 지인들에게 매일 밤 9시에 기도해줄 것을 요청했고, 많은 분들이 함께 했습니다. 임종을 맞이한 날, 지인의 아내와 친했던 분이 이런 글을 적었습니다. 글의 내용 중에서 개인적인 내용은 생략하고 전해드리겠습니다.

 

어느 무신론자의 고민


절박하고 필사적인 마음이 우리를 움직였다.
한 사람을 지키려는 그 짝의 집념, 그리고 우리가 아는 그녀의 회복을 애타게 바라며 마음을 포갰다. 9시에 함께 기도하는데 동참하려고 했다. 거기서 좌절했다. 벽에 부딪쳤다. 초등학교 때 잠시 따라했던 주기도문 정도는 기억하지만 기도는 어색했다. 법당에 가든 성당에 가든 그때마다 기원의 말들을 마음속으로 털어놓기도 했고, 남들 기도할 때 함께 아멘, 따라했지만 내심 송구했다. 신을 믿지 않는 내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랐다. 알 수 없는 만신에게 기원하는 간절함은 분명했지만 절대자에 대한 신앙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력해졌다.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신에게 매달리는 이유를 새삼 생각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달라고 갈구할 대상이 없다는 게 막막했다.

순리, 섭리, 이런 단어들을 좋아하지만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괜찮은 척 할 수 없어 당황했다. 나는 **님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내 안에 털어놓았지만 신께 기도하지는 못했다. 그걸 못하는 내가 한동안 부끄러웠다. 알 수 없는 대상에게 기원하며 내게 신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중략)...바닥까지 떨어져서 구원을 찾는 식으로 신을 영접하고 싶지는 않다. 무신론자의 흔한 고민과 절망을 이번에 마주할지 몰랐다.

 

기도할 대상이 없다는 것


글쓴이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달라고 갈구할 대상이 없다는 게 막막했다고 합니다. 만신에게 기도했지만, 신께는 기도하지 못했다. 그것이 부끄러웠다.’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의지할 대상이 없는 인간, 기도는 하지만 신이 아닌 것에게 기도하는 삶이 얼마나 불행한 삶인지 생각했습니다. 글쓴이는 그런 자신의 상황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인간은 의지하고 기도할 대상이 있어야 견디어낼 수 있습니다.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간다는 점에서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 신학을 닮았습니다. 인간에 대해 긍정해야하는 것은 맞겠지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절대자, 신이란, 인간 너머에 있는 것이요, 인간이 있다 없다 재단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의지와 뜻대로 살아봤습니다. 그런데 삶이 그렇게 우리의 의지와 뜻대로 살아지던가요? 우리의 의지와 뜻대로 살아지지 않아서, 혹은 우리의 의지와 뜻대로 살아지면 안 되기 때문에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도할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오늘 누가복음 본문에서는 제자 중 한 사람이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요청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말하여라.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고,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십시오.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십시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우리가 용서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에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하십시오. 하나님께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아뢰지 않을 것까지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다 아시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 한 마디로 기도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기도(祈禱)?


기도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습니다.

먼저 단어적인 의미에서의 기도란 제물을 드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기도(祈禱)라는 단어로 번역하였습니다. 기도라는 한문 단어 양편에 보면 볼 시자가 공통으로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칼 도자와 목숨 수자가 있지요. 그러니까, 양을 도끼로 쳐서 신께 드리듯 목숨을 바칠 정도로 간절하게 신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둘째, 신앙적인 의미에서 기도란 영적 호흡입니다. 죽음에 이른 육체가 호흡하지 않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도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영적인 호흡은 멈추어도 잘 알 수 없고, 영혼 없는 삶은 심지어 기도의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셋째, 기도는 삶입니다. 기도를 했으면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구했으면, 그 양식을 구하기 위해 힘써야 하고, 이웃의 죄를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면 스스로 용서해 주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삶으로 드리는 기도하고 합니다. 삶으로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언제 기도가 필요합니까?


여러분, 삶이 힘들 때와 일이 잘 풀릴 때, 언제가 더 기도가 필요한 시간입니까?

일이 잘 풀릴 때에도 기도를 쉬지 말아야겠지만, 정말 기도가 필요한 순간은 삶에 힘겨울 때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은 힘든 일을 만나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불평을 쏟아내다가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어 봤자이런 생각이겠지요.

예수님은 삶의 여정에서 힘겨운 일이 닥쳤을 때, 힘겨운 일을 앞두고 있을 때에는 광야로 나가셔서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평상시에도 기도를 쉬지 않으셨지만, 예수님도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면 평상시보다도 더 열심히 기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욱더 붙잡아야할 때, 하나님이 내미는 손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할 때에는 감사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리고 일이 잘 안 풀리고 힘든 일이 생기면 기도해야할 때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기도를 쉬지 마십시오.

 

반드시 기도가 필요할 때


오늘 말씀에 이어지는 9,10절의 말씀에 뭐라고 하십니까?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여러분, 삶이 힘들 때, 내가 어떻게 해도 할 수 없을 그 때는 하나님께 반드시 기도해야할 때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떠나갈 때가 아니라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라는 것을 알아차리십시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기도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뿐 아니라 다양한 이들을 우리의 중보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여러분, 기도하지 않았는데도 삶이 술술 풀린다면, 누군가의 기도로 그리 되었음을 알고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기도할 수 없을 때에는 성령님이 눈물로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고 계심을 기억하십시오. 로마서 826절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중보기도자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한 자녀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한 자녀로 부름 받아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한남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입니다.
교회다운 교회는 자신만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디아코니아 공동체입니다. 디아코니아는 봉사 혹은 섬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을 섬기고 이웃에게 봉사하는 삶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가장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에 매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코이노니아 공동체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친교, 공동참여, 교제입니다. 교인들 간의 친교를 통해서 힘을 모아 교회를 세워가며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 둘, 디아코니아와 코이노니아는 중보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중보기도자로 살아가야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중보하는 일은 결국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중보기도는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기에 하나님께서 더욱더 귀를 기울여주십니다.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 아뢰지 못한 것도 아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중보기도자로 사시어 이런 복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기도할 수 있는 특권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 하셨고,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앞에서 무신론자를 자처하던 이가 공허해했듯이 기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특권, 특별한 권리를 행사하며 살아가십시오.

 

[거둠 기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음을 알고 힘겨운 삶의 자리에서도 절망하지 말고 주님만 바라며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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