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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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8주]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구나!(ppt음성설교포함)

  • 관리자
  • 2023-07-2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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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여덟 번째 주일(20230723)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구나!
창세기 28:10~19


 

지난주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이삭의 쌍둥이 형제 에서와 야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계보를 이어가게 된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 안에 살아가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뒤바뀜의 역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연약할 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은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라는 말씀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쉼표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 야곱이야기(벧엘까지)




야곱은 에서의 장자권을 산 이후, 속임수로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고선 신변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에서도 화가 나서 아버지가 죽으면 야곱도 죽여버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오빠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도망가서 에서의 노여움이 풀릴 때까지 머물러 있으라고 합니다. 

오늘의 성서일과는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을 향해 가던 중에 루스라는 곳에 이르러 돌베개를 베고 누워 자다가 꾼 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하늘 꼭대기까지 닿는 사닥다리가가 있고, 천사들이 그 위를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그 위를 쳐다보니 하나님이 그 위에 서서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다. 네가 누워 있는 그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이런 축복의 말씀을 들은 요셉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잠에서 깨어나 하는 말이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곳에 계셨는데 내가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어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문이다.”합니다. 해가 밝아오자 야곱은 자기가 베었던 돌베개로 기둥을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붓고 그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습니다.
 

■ 루스에서 벧엘로



‘벧엘’이라는 히브리어는 기독교인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단어입니다.
그 중에서도 ‘벧엘성서대학’이 유명합니다.

'벧엘’의 뜻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벧엘이라고 부르기 전 그 성의 이름은 ‘루스’였습니다. ‘루스’는 ‘길을 잘못 들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개명할 때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루스에서 벧엘로 개명된 지명도 그 중요성이 다르지 않습니다. 보통의 경우 ‘벧엘’이라는 이름을 거룩하게 여기다보니 ‘루스’라는 이름은 별로 좋지 않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게다가 ‘길을 잘못 들다’라는 뜻이니 꺼려질만한 이름입니다. 하지만, 루스라는 이름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 약할 때 강함되시네



지난주에 제가 강조하여 말씀드린 것이 연약한 자들의 삶에 개입하셔서 도우시는 하나님, 그래서 뒤바뀜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연약할 때가 가장 강할 때가 될 수 있으며, 그러므로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의 시간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로마서 5장 20절에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게 되었습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해석한 바대로 죄를 지어도 좋다는 말씀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씀이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받았으니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루스라는 이름을 적용하면 이런 말씀이 됩니다.
‘잘못 들어 선 그 길이 하나님의 집이었다.’ 더 넓게 풀면, ‘잘못 들어선 길도 하나님의 집인데 하나님의 집 아닌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라는 말씀이 됩니다. 그러므로 루스에서 벧엘로가 아니라, ‘루스가 벧엘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성서일과의 공통점




오늘 병행성서일과 시가서는 시편 139편의 말씀입니다.
주제는 ‘주님은 늘 가까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고 붙잡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서신서 로마서 8장은 성령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시며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함께 신음하시고, 해산의 고통을 겪고 계시는데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며, 기다리는 것 이것이 참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서 마태복음 13장에는 밀과 가라지의 비유와 그에 대한 해석이 나옵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렸듯이 비유의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하고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밀과 가라지’를 예로 들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서일과의 공통주제는 ‘일상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이며, ‘일상을 통해 말씀하신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마음의 눈을 떠야




그러나 일상에 임재하시고, 일상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이 ‘길을 잘못 든 루스’에서 꿈을 꾸었더라도, 그냥 개꿈으로 여겼다면 루스는 벧엘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대면했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고, 대화도 나눴지만,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이단아로 보였습니다. 로마의 정치권력에게는 팍스로마를 위협하는 정치범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한 까닭입니다.

마태복음 6장 23절에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보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제대로 봐야 제대로 생각하고, 제대로 말하고, 제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헛것을 보면 허튼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눈을 뜨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 기후변화와 수해




2019년 시작된 인수감염병 코로나로 인해 인류는 기나긴 팬데믹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수감염병이 창궐한 원인은 인간이 자연을 심각하게 훼손한 결과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경계가 파괴적인 형태로 이뤄진 결과로 팬데믹을 맞이한 것입니다. 세계적인 폭염과 홍수피해는 기후변화로 인한 것입니다. 기후변화 역시도 인간의 편리를 위해 자연을 훼손한 결과입니다. 그동안 인간의 편리를 위해 자연이 훼손되고 그로인해 지구온난화와 사막화로 인한 재해가 생기면 1차 피해자는 가난한 국가나 연약한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류가 겪는 현실은 누구도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이런 사인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구체적으로 인류에게 주어졌지만, 인류는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 일상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번 수해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새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일상에서 그의 뜻을 가늠할 수 있도록 보여주시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것을 보고 듣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대의 산만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은 사람들, 고요한 눈매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만이 일상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과잉연결의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산만함이 지배하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주의력이 결핍된 세상에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볼 것이 가득한 세상에서 ‘하늘을 나는 새나 들에 피는 백합화’에 눈길을 주고, 차분히 그들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는 연습을 하고, 뭔가를 할 때에는 온전히 몰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신의 쉼표에 마침표 찍지 말라




지난 주간에 ‘하나님의 쉼표에 마침표 찍지 말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돌아보십시오.
누구에게나 원하지 않던 삶, 그러나 오롯이 감당해야만 했던 삶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분깃점이 된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실패했기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해야만 했고,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삶을 돌아보면 ‘그때,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 축복이었구나!’ 이건, 나중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든 그렇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는 하나님은 우리 삶에 ‘쉼표’를 찍으시고, 잠시 쉬면서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제시하는 삶으로 방향전환을 하라는 시간인 것입니다. 
 

■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구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해 도망하던 중에 돌베개를 베고 고단한 몸을 쉬었던 루스가 곧 벧엘이었습니다.
루스는 이미 벧엘이라는 이름을 얻기 전에도 ‘하나님의 집’이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일상, 삶 모든 곳이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집이니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집 벧엘에서 사는데 뭐가 두렵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실 터인데 절망할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의 눈과 귀를 여시어 “지금 내가 발붙이고 사는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구나!”하는 깨달음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야곱처럼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고백하며 온갖 세상의 두려움을 몰아내시고 힘차게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거둠 기도]



임마누엘의 하나님,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면서도 우리는 종종 하나님 없는 듯 살아갑니다. 내 잣대로 내 삶이 마침표를 찍고 하나님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루스의 세상이 벧엘임을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벧엘이 아닌 곳이 없음을 알게 하옵소서. 일상을 통해서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시는 하나님, 마음의 눈과 귀를 열어 그 말씀을 듣는 지혜를 허락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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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실황 메시지 /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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