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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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7주]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삶(ppt음성설교포함)

  • 관리자
  • 2023-07-1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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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일곱 번째 주일(20230716)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삶
창세기 25:19~34


■ 정보 홍수시대



요즘 인류는 정보 홍수시대를 살아갑니다.
저는 주로 온라인으로 필요한 책을 구입해서 봅니다. 주로 제 관심분야의 책들을 보니, 제 분야 밖의 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게다가 AI기술이 발달하면서, 인터넷서점에서는 저의 도서구입내력을 연구해서 제가 관심을 가질만한 신간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러보니 엄청나게 많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북 디자인도 너무 좋고, 내용도 좋습니다. 책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터넷 발달로 SNS를 통해서 각종 정보를 얻는데 그중에서 재미뿐만 아니라 제법 유익한 것도 많습니다. 볼 것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고전처럼 느껴지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닐 것입니다.
 

■ 볼거리가 귀한 시대의 성서보급



70년대 초만 하더라도 볼 것과 읽을 것이 귀했습니다.
TV도 귀했고, 세계문학전집 같은 것도 부잣집 아이들이나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1950년대 말 폭발적인 부흥기를 맞이했던 한국교회에 선교사들의 후원과 대한성서공회 같은 곳에서 성경보급에 힘을 썼기에 다른 책은 없어도 성경은 집집마다 한 권씩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선진국으로 여겨졌던 유럽의 대부분 문학작품이 기독교적인 이해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들이 있었기에 문학을 하는 분들에게 성경은 필독서였습니다. 또한 볼거리가 없으니 신앙인이 아니어도 심심풀이로 성경을 보기도 하고, 기독교인들은 당연히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이야기들을 잘 알았습니다. 물론, 이야기 자체를 안다는 것과 의미를 아는 것은 차이가 있지만, 성경의 스토리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죠. 
 

■ 스토리도 의미도 잃어버린 세대



그런데 제가 90년대 교단의 총회교육원에서 교재 만드는 일을 담당하다보니 이런 문제가 생겼습니다.
교사가 “어린이 여러분, 삭개오 이야기 다 알죠?”하면 어린이들이 “예!”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 중에는 사실 ‘삭개오’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냥 모른다고 하기 뭐하니까 “예!”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설령 안다고 해도 스토리자체를 아는 거지, 스토리 안에 의미가 무엇인지, 그것이 지금 여기에서 어떤 의미인지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결국, 스토리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스토리에 의미만 잔뜩 부여하니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격이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나타난 열매를 우리 한국교회는 지금 거두고 있습니다.

스토리도 모르고, 의미는 왜곡되어 이단사설에 휘둘리는 신앙인들을 양산해 내었다는 것입니다. 몇몇 목사들은 이런 취약점을 이용해서 대형교회를 이루는 데는 성공했지만, 교회는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은 첩 하갈에게서 장자 이스마엘을 얻었지만, 본처 사라가 이삭을 낳자 하갈과 이스마엘을 사막으로 쫓아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복을 이어받은 이삭은 쌍둥이 아들을 얻습니다. 장자는 에서요, 차남은 야곱입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의 이야기와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는  병행구입니다. 왜냐하면, 장남 대신에 차남이 축복받는 도식이 같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차남 혹은 막내의 역사, 연약한 자 혹은 버림 받은 자의 역사라는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레아와 라헬의 이야기도 그렇고 차녀인 라헬의 아들 요셉의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요셉 이후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아우성치던 하피루를 부르시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바벨론 그발 강가에서 고향을 그리며 포로 생활하던 이들에게 성경을 기록하게 하십니다. 모두 연약한 자들, 실패한 이들의 삶으로 하나님께서 들어오셔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한 삶



조너선 색스라는 신학자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사람들은 남들이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을 자연적으로 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은 강해지려면 약해져야만 했다.”고 합니다.

나님께서는 특별히 잘난 사람을 불러서 일하시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보통의 사람들, 더 나아가서는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소외되고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여러분, 결핍 혹은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통로라고 생각하십시오. 원하지 않는 고통과 아픔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가장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시간임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걸어가기조차 힘들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업고 가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에서와 야곱(성서일과)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가 임신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삭이 기도하고 간구하니 하나님은 20년 만에 쌍둥이 아들을 보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임신 중에 쌍둥이는 뱃속에서부터 싸워 어머니를 힘들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태중에 두 민족이 있다고 하시며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쌍둥이 중에서 먼저 나온 장남은 에서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붉고 전신이 털옷 같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입니다. 아우는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와서 야곱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발꿈치를 잡았다.’라는 뜻도 있지만, ‘속이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 되었었고, 야곱은 조용하게 장막에 거주하며 어머니의 일을 도우며 살았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사내다운 에서가 마음에 들었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알아서 앞가림 잘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큰아들보다 제 앞가림도 잘하지 못하는 야곱에게 더 마음이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냥터에서 지쳐 돌아온 에서는 야곱이 붉은 팥죽 끓이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한 그릇 달라고 하니, “형의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파십시오.”합니다. 사실, 장자권이라는 것이 말로 판다고 해서 파는 것도 아니었기에 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팝니다. 오늘 성서일과는 여기까지 전하면서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고 합니다.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 극적인 이야깁니다.
 

■ 장자권과 믿음의 계보



고대근동에서의 ‘장자권’이란, 아버지 사후에 가장의 권리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 권리는 ‘재산권’을 의미했습니다.

재산권을 가진 가장에게는 가족을 지켜야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사회적 안전장치가 미흡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가장의 역할은 아주 중요했고, 장자권 역시도 그랬습니다. 그러니 참으로 중요한 것인데, 에서는 그것을 가볍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말로 “내가 네 동생이다”라고 한다고 정말 동생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장자권을 판다고 해도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는 에서는 재산을 물려받는데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장자권은 물질적인 것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축복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속이는 자라는 이름대로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서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분노하니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에서는 동생의 몫까지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장자권을 가볍게 여겼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자권의 복이 단순히 물질적인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 뒤바뀜의 역사



성서를 살펴보면 이삭의 배다른 형 이스마엘이나 야곱의 형 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형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형제간에 화해를 할 때에는 주도적이었습니다.

야곱과 에서가 화해할 때에는 에서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 같았다는 표현까지 등장합니다.
어찌 보면 이스마엘이나 에서가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긴듯한데, 오히려 그들이 이삭이나 야곱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을 ‘뒤바뀜의 역사’라고 합니다. 무엇이 뒤바뀐 것이냐면, 강한 자와 약한 자의 뒤바뀜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야곱은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내성적이고 여성적이라 가사 일을 도우며 집안에서 맴돌고, 속임수에 능한 약점이 많고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삭이 한 일은 우물을 파고 빼앗기고 다시 우물을 파고 빼앗긴 일밖에는 없습니다. 자기가 판 우물 하나 지킬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연약한 자들을 통해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역사는 뒤바뀜의 역사입니다.
 

■ 말씀 묵상의 소중함



여러분, 예수님의 삶을 보십시오.
암하렛츠, 땅의 사람들, 무지렁뱅이요 죄인이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이들을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도 저마다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이 개입하실 수밖에 없는 존재요,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장자권을 이어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장자권을 이어받은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제대로 읽지도 않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묻지 않는 사이에 맘몬에 눈이 먼 우상숭배자들이 성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재단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물질적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면서 하나님의 장자권을 물질적인 것으로 변질시켜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제대로 이해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런 중에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말씀의 참뜻을 깨닫게 하시고, 헛된 사설로부터 여러분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삶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아무리 강하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개입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것을 아는 삶이 지혜로운 삶이고, 이것을 모르는 것이 미련한 삶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때일수록 하나님께서 내 삶으로 깊이 들어오시는 시간임을 기억하십시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은 연약한 이들이었지만 한계상황에서 늘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며 살았습니다. 삶이 너무 힘든 시간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이라고 여기십시오. 

“하나님의 쉼표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

힘든 중에 계신 분들에게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연약할 때 개입하시고 힘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고 믿음의 계보를 이어가는 장자권의 복을 주십니다. 그 하나님을 붙잡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약할 때 강함되시네’ 찬양하시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거둠 기도] 
약한 자를 통해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우리는 저마다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주님을 의지해 살고자 하오니 주여,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이끌어주십시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묵상하게 하시고, 묵상하는 중에 말씀을 깊이 깨닫는 지혜를 주시어 바른 길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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