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교회(창조절 7주)
데살로니가전서 1:1~10
오늘의 삶은 미래를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미래관이 무엇인지에 따라 현재의 모습이 달라지고, 하루하루의 조각들이 모여 한 사람을 만듭니다. 인간은 현재만 살 수 있지만,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따라서 과거와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은 신비입니다. 과거나 미래에 우리의 삶을 저당 잡혀 현재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지나간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영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단지 ‘현재’의 시간을 허락하셨고, ‘지금 여기에서’ 결단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시길 원하시지만, 순종할 것인지 아닌지는 각자에게 맡겨두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책임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려면, 지금 여기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미래관’이 분명해야 합니다.

미래관은 ‘꿈’ 혹은 ‘비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시키면 안 되지만, 미래에 대한 꿈이 없으면 오늘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어떻게 그리느냐하는 문제는 참 중요합니다. 자신이 꿈꾸는 미래가 지금의 나를 만들고,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다시피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우리를 주춤거리게 만들고, 현재에 안주하는 삶으로 이끕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에 대해서 성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 삶의 근본 사실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 믿음이야말로, 삶을 든든하게 하는 기초입니다.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단서입니다(메시지).-

‘볼 수 없는 것을 본다.’ 그렇습니다. 미래관이 분명한 사람은 자기의 미래를 분명하게 보고, 그런 자신이 되려면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믿음이 없다는 것은 ‘미래를 보는 안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당장 지금 눈앞에 이익에 눈이 멀어 미래를 소비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경험하는 코로나19, 기후변화, 생태계의 파괴 등은 미래에 대한 안목 없는 인류가 저지른 악행에 대한 결과입니다.

1973년에 출간된 경제학자 E.F.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_1911~1977)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있습니다. 47년 전에 발간된 책이니 꽤 오래된 책이지만, 요즘도 여전히 사랑받는 책입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읽었던 책인데, 최근에 이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고전을 읽는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그때는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되는 기쁨이지요. 그 책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거대주의(gigantism)라는 우상숭배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그러므로 작은 것의 미덕을 고집하는 게 필요하다.
그간 인류문명은 ‘좀 더 빠르게, 좀 더 높게, 좀 더 강하게’라는 표어를 앞세워 달려왔습니다. 올림픽 정신을 표현하는 문구이기도 한 이것은, 남보다 빠르게 성장함으로써 좀 더 큰 행복에 먼저 도달하기 위한 약육강식의 법칙이 되었습니다. 슈마허는 이런 생각들이 확신을 넘어 거의 종교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런 확신은 결국 환경 파괴와 인간성 파괴라는 극복하기 힘든 부산물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47년 전에, 미래세계를 내다보면서 한경을 지키고,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면 더 높고, 빠르고, 강하게 아니라 ‘낮고, 느리고, 약한 것(작은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던 슈마허의 주장은 곧 예언자의 소리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미래를 보는 안목이 필요하지만, 그런 안목을 가진 이들도 드물고, 그런 안목을 가지고 예언자적인 소리를 외친다고 해도 그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1900여 년 전, 바울 서신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서신서 데살로니가전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편지는 ‘재림의 서신’이라고 불리며, ‘재림’은 ‘미래’에 관한 것이므로 ‘미래에 관한 서신’이라고도 불립니다. 데살로니가전후서는 ‘미래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서신입니다. 47년 전, 슈마허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에서 주장한 내용들을 우리가 받아들였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만, 사실 1900년 전에 사도 바울이 서신을 통해서 우리게게 준 복음의 말씀을 여전히 삶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했어도,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삶으로 살아왔으며, 그들로 인해 여전히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믿음과 복음의 능력은 여전히 전해지고 있으니 아직도 희망의 불꽃은 꺼지지 않은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구원에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믿는 것을 아는 것, 원하는 것을 아는 것, 해야 할 것을 아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야하고, 그분이 원하는 것에 내가 원하는 것을 굴복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그 일을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신기루 같은 허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의 말씀에서는 이를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믿음의 행위(work of faith)입니다.
둘째, 사랑의 수고(labor of love)입니다.
셋째, 소망의 인내(patience of hope)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 서신에서 공통적으로 믿음이 가장 처음에 나오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신앙인의 삶에서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은 소망입니다. 하나님이 오실 때 모든 것이 완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덕목인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식물의 뿌리와 줄기와 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결과로 따라오는 역사(work), 사랑의 표현인 수고(labor), 소망으로부터 오는 인내(patience)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사랑이 절실히 요구되었으므로 제일을 사랑이라고 했지만, 데살로니가전서는 환난 중이므로 소망을 제일로 두고 있습니다. 서신으로 구분하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믿음을 강조하고 있고, 고린도전서와 빌립보서는 사랑을, 데살로니가전서와 골로새서는 소망을 주제를 삼고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신앙인이 품고 살아야할 내적인 품성이라면, 행위와 수고와 인내는 밖으로 나타나는 열매인 것입니다.
먼저, 믿음의 행위, 믿음의 역사(work of faith)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헬)ergon 에르곤/ 일, 직업, 임무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생명은 살아있는 것이므로 활발하게 움직이며 운동을 합니다. 그런 점에서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약 2:17, 26)’이며, 믿음은 행동하게 하는 동력이 됩니다. 믿음은 볼 수 없는 것을 실상처럼 보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말씀하시며 하란을 떠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는 약속의 땅을 본 것처럼 행동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일(work)합니다. 행동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역사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죽은 믿음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미래를 실상인 듯 보시고, 행동하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사도행전 2:17).”
예언, 환상, 꿈은 모두 ‘미래’입니다.
예언이기에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환상이기에 분명하지 않고, 꿈이기에 확실하지 않지만, 믿음은 그것의 실상을 보고 행동하는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사랑의 수고(labor of love)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헬) kopos 코포스 / 고난, 어려움, 번거로움, 괴로움, 자르다, 채찍질하다.
사랑의 수고는 믿음에 기초합니다.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을 보았기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 온갖 고통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애쓰면서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온갖 박해 가운데서도 기쁘게 하나님을 섬기고, 병든 자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수고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수고는 온갖 고난과 어려움과 번거로움과 괴로움으로 인해 사랑하는 것을 포기할까 하는 마음을 잘라내고 채찍질하여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힘은 ‘믿음’에서 옵니다.
사랑의 수고는 산을 올라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그러나 그 끝에 어떤 것이 있음을 알기에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은 ’쥬이상스(jouissance)‘입니다. 라캉이 말하는 쥬이상스는, 단순한 쾌락적 즐거움(pleasure)이 아니라,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통 속에 스민 쾌락을 의미합니다. '늪을 기어가는 기쁨'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교회의 일은 사랑의 수고로 되어져야 합니다.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때로는 번거롭고, 괴로워도 하는 것입니다. 한남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 서기 위해서는 교우 여러분들의 사랑의 수고가 필요합니다. 이 사랑의 수고는 여러분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소망의 인내(patience of hope)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헬) hupomone 휘포모네 / 인내, 참음, 견딤
’인내‘라는 단어는 ’휘포(아래에)라는 단어와 ‘메네(머물다)’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아래에 머물다’-그래서 ‘인내’라는 단어에는 ‘포도주 틀에 놓여 으깨어지는 포도’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으깨어지는 아픔을 통해서 포도주가 되는 것처럼, 인내의 과정 없이 어떤 일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경지에 이르려면 그 일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열정을 가지고 몰입하게 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몰입하는 이들만이 그 분야에서 성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런 몰입의 시간을 인내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runner's high’라는 말이 있습니다.장거리 마라톤 선수들이 완주한 뒤 평온함을 느끼고 행복해하는 감정을 뜻하는 단어인데, 오직 인간만이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내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최고의 덕목이라고도 합니다. 깊은 성찰을 통해 자신의 임무를 찾아냈다면,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몰입해야 합니다. 그러는 중에 우리는 인내를 선물로 받을 것이며, 인내는 자신이 몰입한 임무를 더 깊이 사랑하도록 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주님의 재림을 ‘소망’했습니다. ‘소망’은 미래와 관련 있는 단어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믿음의 행위’로 주님의 재림을 실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소망의 인내’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인내의 시간에 그들은 ‘사랑의 수고’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름다운 교회를 이뤄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 여러분, 한남교회도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인해 작지만 건강한 교회로 서가고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큰 교회는 아니지만, 코로나19이후의 건강한 교회의 모범으로 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교회입니다. 이번 코로나 19로 많은 교회들이 넘어졌습니다. 어떤 교회는 예배처소가 사라졌고, 어떤 교회는 천박한 신앙의 밑천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한남교회는 여러분의 변함없는 믿음의 행동과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일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신앙을 이뤄내신 여러분들이 복 받을 일이기도 합니다. 한남교회는 작지만,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고,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건강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함께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가는 비전을 품고, 교회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또한 여러분의 꿈도 확장되어가길 축복합니다.*
[거둠기도]
하나님,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를 지켜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든든히 서가는 우리가 되게 하셔셔ㅏ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으로 만들어가게 하옵소서.
오늘 주신 말씀을 품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간직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음성설교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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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설교듣기/ 주일설교실황녹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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