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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감사주일] 에이 숨채요(ppt영상설교포함)

  • 관리자
  • 2023-07-0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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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다섯 번째 주일/맥추감사주일(20230702)
에이 숨채요
시편 13:1~6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2023년 하반기기 시작되는 주일이며, 상반기를 결산하며 감사드리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보릿고개를 경험하신 분들은 ‘보리를 수확하는 절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아실 것입니다. 우리 인사말에 “식사하셨습니까?”가 있습니다. 외세의 침략과 권력자들의 착취로 인해 열심히 일해도 하루 세 끼를 건사하기조차 힘들던 시절을 많이 겪은 민족만이 가질 수 있는 인사입니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사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사말은 인도 네팔지역에서 사용하는 ‘나마스떼’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당신을 존경합니다.”라는 뜻의 인사입니다. 힌두교도들의 전통적인 인사말인데 산스크리트어의 어원을 따라 올라가면 “내 안에 있는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인사를 드립니다.”라는 뜻이랍니다.

그 외에도 샬롬, 샨티, 봉쥬르, 구텐탁, 니하오, 씬짜오 등등 다양한 인사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인사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오늘 제목이기도 한 “에이 숨채요”, 마치 우리말 “에이, 숨차요”처럼 들리는 이 말은 까레이스키 인사말로 “살아있다는 것이 숨차도록 고맙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에이 숨채요”라는 인사말을 묵상하며, 문영숙 작가의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을 읽고, 까레이스키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사말은 바로 “에이 숨채요”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 까레이스키의 역사


까레이스키(까레이 – 코리아, 고려, 스키 –민족)는 조선후기 이래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의 후손인 고려인들을 가리키는 러시아 말입니다.

1860년대 극심한 가뭄과 관리들의 수탈에 지친 이들 중 러시아와 가까운 함경도민들이 러시아 연해주(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하여 농지를 개간하며 생계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일본제국주의의 침탈과 한일합방이후 독립운동과 생계유지를 위해서 많은 이들이 몰려오면서 고려인 까레이스키는 급속도로 증가되었습니다. 그러나 1937년 러시아혁명에서 승리한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 사막지역이었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되어 험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1994년 mbc에서 22부작 드라마로 상영된 바도 있고, 김동현, 차인표, 정혜선, 조민기, 한석규, 손지창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총출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sbs의 모래시계 열품에 밀려 큰 반양을 일으키진 못했답니다. 이후에도 까레이스키의 역사를 담은 다큐가 많이 방송되었습니다만, 우리는 겨우 까레스키의 존재만 겨우 알 뿐입니다. 
 

■ 에이 숨채요


저는 지난 주 소설가 문영숙의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을 읽고 잠을 쉽게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낯설고 물 서러운 이방의 땅, 가혹한 환경과 혹독한 날씨, 먹고 살고 지내는 것조차 벅차고 힘겨운 그들의 삶을 읽었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함께 나누었을 이 작은 인사말에서 눈물겹고 힘겹지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며 서로를 격려하듯 나누는 인사말의 무게는 참으로 무거웠습니다.

조국을 떠나 이방 땅에서 황무지를 개척하고, 황무지로 유배되어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이들임에도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도록 감사하며 “에이 숨채요”라는 인사를 나눈 그 마음, 그것이 감사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이 시대와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한 우리를 각성시켜주는 인사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 시편 13편


시편 13편의 시인은 도무지 밝아오지 않을 것 같은 밤에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합니다. 아무 대답도 없고, 얼굴도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시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원수들의 웃는 얼굴뿐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마음은 근심으로 사위어 갑니다. 시인은 지속적인 고통을 당하며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는데 원수들은 의기양양한 꼴을 보는 일은 참으로 힘겨운 일입니다. 

왜 시인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까 생각해봅니다. 혹시, 시인의 잘못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만일 자신이 당하는 재난이 원수들의 공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올무에 의한 것이라면 시인의 기도는 너무 교만한 기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 시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 쓴 것일 수도 있고,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 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시편 3장처럼 정확하게 ‘압살롬에게 쫓길 때에 쓴 시’라는 주석은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시인의 상황이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것과 자신을 괴롭히는 악인들은 승승장구하여 자신을 업신여기는데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이지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인은 유일하게 딱 한 가지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자비를 청하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넘어 계시는 분이시지만, 항상, 아우성치는 이들, 절망과 아픔 속에서 부르짖는 이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시간 안으로 오시는 분이십니다. 초월하시면서 내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는 시인은 지금 자신의 삶과는 다른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므로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자기의 인생의 개입하게 하시어 현존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역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역사입니다. 절망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다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에도 불구하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회복된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


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니 절망과 고통이 가득하던 마음이 물러가고 기쁨이 넘치게 되고, 찬송을 드리게 될 미래를 바라봅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자각한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삶에 개입하시고 주도적으로 움직여주실 것을 구합니다. 그러자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5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의지합니다.”

‘그러나’라는 접속 부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입니다. 현실은 여전히 암담하고, 상황이 이 바뀐 것도 없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다시금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절망의 순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다. 모두가 넘어져서 끝났다고 절망하는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입니다. 
 

■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한 시간


까레이스키로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 삶의 밑바닥에서 “에이 숨채요!”라고 인사를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되었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줌으로써 자신도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교우들 중에서도 까레이스키처럼 힘겨운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이 계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떤 부분에서는 힘겨운 삶을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힘들고 어려워 벗어나고 싶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분도 계십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우리의 삶으로 초정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기도와 감사입니다.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예전에는 보리를 거두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보리보다 더 많은 것을 거두면서도 감사를 잃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루를 시작하실 때에 오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삶이 힘들어도 숨을 쉬며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기도와 감사가 어우러진 삶입니다.

“에이 숨채요!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숨차도록 고맙다.” 이것이 맥추감사주일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인사말입니다. 살아았다는 것만으로도 숨차도록 고마워하시고, 감사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기도]
샬롬의 주님, 한결같으신 주님, 우리가 평안할 때뿐만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 더욱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옵소서. 하나님의 개입이 필요할 때 하나님을 떠나지 말게 하옵소서. 주님, 맥추감사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것에서도 심지어는 절망적인 상황 중에서도 감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을 간직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에이 숨채요!” 인사를 나누며 살아가던 까레이스키처럼,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신앙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에이 숨채요 ppt영상설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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