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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13주]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라

  • 관리자
  • 2020-08-30 09: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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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라(20200830/ 성령강림후 13주)
예레미야 15:15~21


사랑하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코로나 19로 인해 함께 예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모아 각 처소에서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아주실 것입니다. 오늘을 성령강림 후 13번째 주일입니다. 이번 주일 성서일과는 예레미야 15장 15~21절의 말씀입니다.

 

저는 구약성서에서 하나님과 제일 가까웠던 사람은 모세였다고 생각합니다. 모세는 소명을 받은 후에도 주저주저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말년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 아론의 황금송아지에게 절하던 백성을 용서해 달라며 차라리 자기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도 합니다. 보통 가깝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대화입니다. 모세 다음으로 하나님과 가까웠던 사람을 고르라면 저는 예레미야 예언자를 꼽습니다.

구약성서를 기록하던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모세를 닮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의 소명설화와 모세의 소명 설화도 유사하지만, 힘들 때 탄식하고, 원망하는 모습도 모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세가 소명을 받았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 4:10)”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렘 1:6)”

그러나 모세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택하셨듯이, 예레미야 역시 그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뭇 민족에게 보낼 예언자’로 택하십니다. 하나님이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렘1:10)”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전하라는 메시지는 6가지 입니다.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고, 넘어뜨리라는 부정적인 네 가지 메시지요, 건설하고, 심게 하리라는 두 가지 긍정적인 메시지입니다.

, 예레미야의 예언은 뽑고, 파괴하고, 파멸시키고, 넘어뜨리는 동작을 유발한 후에야 비로소 건설하고 심는회복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릇에 담긴 더러운 물을 완전히 쏟아버리고 씻은 후에야 새 물을 담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이 예언의 말씀은 안타깝게도 그대로 이뤄집니다.

그러나 예언의 선포와 성취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가 생깁니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렘 20:8)”

예레미야가 심판 메시지를 전할 때마다 그들은 회개하기는커녕 예레미야를 조롱합니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하소연합니다. “도대체 이럴 수 있습니까?” 이렇게 하소연하며, 예레미야는 노골적으로 하나님이 그를 속였다고 원망합니다. 그 내용이 오늘 읽은 성서일과의 말씀 앞부분입니다. 푸념과 탄식은 18절까지 이어집니다. 예언자는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니까?”라고 항변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사막의 신기루’ 같다는 것이지요.

이런 예레미야의 탄식에 대해 하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그 말을 거두어라.”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와 새번역 성경은 에서는 헛된 것을 버리고라는 부분을 천박한 푸념이 되지 않게 하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 선지자의 하소연이 하나님 보실 때에 ‘천박한 푸념’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사야보다 약 100년 후, 남왕국 유다 예루살렘에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그는 기원전 626년 요시야 왕 제13년에 소명을 받아 예루살렘이 망하던 기원전 587년까지 예언 활동을 했습니다. 요시야가 종교개혁을 단행했지만, 그 개혁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요시야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종교개혁은 중단됩니다. 여호아김이 유다의 왕이 되자 이스라엘 종교는 이교화가 가속화되었고, 그의 예언대로 587년 남왕국 유다는 멸망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이같이 조국의 패망을 지켜본 비운의 예언자였기에 ‘눈물의 예언자’라고도 불립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의 희망이 좌절되고, 성전이 파괴되고,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목격한 예언자, 게다가 예언을 선포하는 내내 조롱을 당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말할 수 없는 고통은 그의 영혼을 정화하고 깊게 만듦으로 이전의 그 어떤 예언자도 선포하지 못했던 말씀을 선포하게 합니다.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렘 31:29~30)”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는 예언의 말씀은 당시 유대 정통 사상의 연대 책임론과는 반대되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 사회에 개인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은 항상 전체 속에 감추어진 연대책임을 지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그리하여 조상의 나쁜 죄는 3대까지 이어진다고 믿었고,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유다가 패망한 것도 자신들의 죄가 아니라 ‘조상 탓’으로 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패망의 책임은 조상 탓이 아니라 ‘당대를 살아간 당사자들 개인의 몫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즉, 공동체의 신앙에서 실종되었던 각 개인의 신앙의 몫을 강조하므로, 각자의 마음에 새겨지는 하나님의 새 계약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3)”

 

이제까지의 계약은 돌 판에 새겨진 것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돌 판에 새겨졌던 계약은 돌이 깨어지면서 깨어졌지만, 각자의 마음에 기록된 계약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 언약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돌 판에 새겨진 옛 계약으로 준엄한 심판을 받았지만, 그래서 뽑히고, 허물어지고, 파멸되고, 넘어졌지만이제는 새 계약에 따라 건설하고 심는회복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심판의 메시지는 일시적인 것이지만, 회복의 메시지는 영원할 것입니다. 이것을 예레미야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예레미야 31장 3절의 말씀입니다.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렘 31:3)”

 

예레미야는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는‘ 준엄한 심판을 선포했지만, 동시에 ’건설하고 심는‘ 하나님의 따스한 위로의 말씀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멸망하기 전에는 선포할 때마다 조롱받았던 예레미야의 메시지가 이제는 모든 것이 초토화되어 포로로 끌려간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는 메시지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예언은 절망을 뛰어넘어 희망을 전한 예언이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새 계약이 실현되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이스라엘을 백성은 예언자의 예언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미래를 향해 힘차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번 주 성서일과를 읽고 묵상하면서 처음에는 아주 당혹스러웠습니다.

만일 이 말씀을 전광훈 씨나 지난 15일 광복절 광화문집회에 참여했던 이들이 읽는다면 어떻게 읽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혹시 자신들이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살다가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성서일과를 본문으로 성경본문을 택할까 싶었는데 ’하나님의 대답‘부분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으면서 이 말씀의 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번역 성경 19절은 이렇게 번역되었습니다.


“나 주가 말한다. 네가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맞아들여 나를 섬기게 하겠다. 또 네가 천박한 것을 말하지 않고, 귀한 말을 선포하면, 너는 다시 나의 대변자가 될 것이다. (렘 15:19a).”


’네가 돌아오면‘- 이 말씀은 소명을 받은 예언자 예레미야지만 이렇게 탄식하고 불평하는 시간들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시간‘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에 하는 불평과 탄식은 ’천박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레미야의 탄원이 제법 그럴 듯하지만, 천박한 말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오늘 성서일과의 초점은 예레미야의 탄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대답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레미야의 탄식을 읽으면서 ’나도 예레미야처럼 고난당하고 있다‘고 단순 대입시키면 말씀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자신들의 뜻을 확증하기 위해 성서를 인용하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말씀의 앞뒤 정황도 살피지 않고, 특정 구절을 축복의 말씀처럼 사용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8)”는 욥기의 말씀입니다. 이 말은 욥의 친구 빌닷이 욥을 힐난하며 한 말입니다. 그러니 축복의 말씀일 수가 없지요. 욥의 입장에서 빌닷의 말은 가슴에 못을 박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도 기독교서점 액자 코너에 가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성구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가르치는 자들에 속하는 목사들의 책임입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도 그렇고, 금식이나 기도에 대한 가르침, 믿음, 예배, 과부의 헌금 등 중요한 내용들 상당수가 교회외연의 확장을 위한 이야기로 왜곡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의 초점은 ’주님의 대답‘에 해당하는 19절 이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첫째, 돌아오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하라.
둘째,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셋째, 너를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여, 너를 악한 자에 손에서 구원하리라.


세상풍조를 따라 살아가는 우리를 향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세상풍조를 따라 살아가는 우리에게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세상풍조는 헛된 것이니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들과 한 무리가 되어 살아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혹시나 세상은 다 그렇게 사는 데 나만 이렇게 살다가 뒤처지는 것이 아닐까 하여, 세상풍조의 질서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놋 성벽으로 세워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축복의 말씀인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 19나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재앙의 현실은 다른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서 세상풍조에 휩쓸려 살아가지 말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세상이 다 그렇게 살아도 그리스도인 한 사람으로서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놋 성벽이 되게 하시어, 넉넉히 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샘터교회 안중덕 목사(감리교)가 코로나 감염시대가 전해주는 메시지라는 글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것은 ’그 입 다물라‘는 뜻이다.
막말과 거짓말을 하지 말며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말이다.

손을 자주 씻으라는 것은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뜻이다.
마음의 거울을 닦아야 자신이 보이고, 마음의 창을 닦아야 이웃도 보인다는 말이다.

사람과 거리두기를 하라는 것은 ’자연을 가까이 하라‘는 뜻이다.
자연을 가까이 할수록 마음이 넉넉하여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리라.

대면예배를 금지하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뜻이다.
잠잠히 하나님을 대면할수록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이 가까이 이르게 되리라.

집합을 금지하라는 것은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라는 뜻‘이다.
모여서 선동하거나 힘자랑하지 말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고, 홀로 외로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이들의 짐을 나누어지라는 말이다.
 






여러분, 함께 예배하지 못하고 각 처소에서 예배드리는 이 시기에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돌이켜야 합니다. 그래야, 코로나 19이후 한남교회는 이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우뚝 서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견고한 놋 성벽이 되기를 축원하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속히, 함께 예배하는 날이 오길 기도해 주십시오. 말씀을 기억하며 거둠 기도드리겠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75820?e=23709860

 

https://youtu.be/S065m6O5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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