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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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12주]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새로운 생활

  • 관리자
  • 2020-08-2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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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12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새로운 생활
로마서 12:1~8
 

 


사랑의 주님께서 오늘 함께 예배하는 모든 분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입추가 지났으니 가을입니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계절이 어떻게 오고가는지 느낄 틈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에서도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코로나 19로 공동체 예배의 존립자체가 위협을 당하면서 ‘예배와 교회의 본질’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코로나 19와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환경재앙들은 지금까지 인류의 문명이 얼마나 인간중심적이고 맘몬중심적이었는지를 깨닫게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교회와 예배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와 창조세계 보전에 대한 논의와 실천이 뒷북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와 인류를 구원하는 초석이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 우리 사회는 교회를 중심으로 한 코로나 19의 재확산을 보면서 망연자실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불교나 가톨릭에서는 이런 일이 없는데, 교회에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결론은 코로나 19로 확산시킨 신천지나, 교회들의 예배방식이 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19를 확산시킨 교회들의 예배실황을 담은 몇몇 동영상을 보면서 목사인 저도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기초하지 않은 막말들이 강단에서 거침없이 선포되고, 교인들은 거의 광신도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질병의 문제와 믿음의 문제는 다른 영역임에도 이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면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며, 교인들에게 방역의 기본수칙이 마치 사탄의 계략인 것처럼 호도하는 목사도 있었습니다. 

저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교회의 간판을 달았지만, 교회가 아니고, 목사지만 목사가 아니요, 예수를 전하지만 예수가 없는, 아론의 황금송아지에 절하는 광란의 축제였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목사는 예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모두 본질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들로 인해 교회가 욕을 먹고, 목사가 욕을 먹고, 예수의 이름이 땅에 떨어져 모욕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성서일과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새로운 생활’에 관한 말씀입니다. 새로운 생활의 기초는 예배입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은 코로나 19이후, 공동체 예배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위축당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에클레시아’는 모임의 공동체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그 기본이 위협당하고 있으니 겨우 현상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 도래된 것입니다. 예배 예식도 간소화된 예배로 인해, 예식 하나하나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고 말씀중심의 예배가 되다보니 공동체성은 점점 옅어집니다. ‘새로운 생활의 기초인 예배’가 위협을 당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공동체성을 이어갈 것인지가 저의 고민입니다. 이런 고민 중에 있는 저에게 오늘의 성서일과 로마서 12장 1~8절의 말씀은 다양한 실마리를 주었습니다.

 

첫째,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1).”
 

 


‘몸’은 헬라어로 ‘소마(soma)’로 피와 살을 가진 육신을 의미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시대의 예배는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면서 하나님과의 화해를 도모하고, 제물을 통해 우리에게 화해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예배의 핵심이었습니다. 구약대에 그들은 소나 짐승을 죽여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셨으니, 더 이상 짐승을 죽여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니 우리의 몸,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나와 ‘마음과 뜻과 정신’을 모아 드리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구약시대의 죽은 제물과 구별되는 의미로 ‘산 제물’로 드리라는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산 제물로 드리되 ‘거룩함’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거룩함’을 담보하기 위해 구약시대에 흠이 없는 순전하고 성별된 짐승을 드렸듯이, 이제 짐승을 통한 제사는 없어졌으니 ‘흠 없는 깨끗한 자신을 드리는 것’이 ‘거룩한 산 제물’을 드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재물이란, 인간이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제물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풀이하면,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신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이며, 그것이 곧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나의 뜻을 관철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시간입니다. 예배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드리는 것이 온전한 예배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예배가 우리의 삶 전체를 드리는 귀한 예배가 되길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2)“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거룩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서, 한 시대를 풍미하는 생각들이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대를 풍미하는 생각들은 무엇입니까? 물질의 풍요를 기반으로 한 성공신화입니다. 물질의 풍요는 권력을 쉽게 얻을 수 있게 하고, 세상이 주는 각종 편리를 얻게 합니다. 교회의 대형화는 교회가 이 세상의 풍조를 따랐다는 증거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 기초하지 않고 세상의 풍조에 근거를 두고 기초를 두었으니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 세대의 풍조를 축복이라고 가르쳐 온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도 교인들도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장님이 되었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바라보면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분명하게 보이는데, 그 안에 발 담그고 몸담고 있으니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세대는 물질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니, 너도나도 그런 곳으로 사람들이 몰립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 소유했는지가 신앙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가질 수도 있고, 적게 가질 수도 있지만,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한남교회가 대형교회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해 내고, 힘든 상황들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 주시기를, 그 일을 위해 헌신하는 여러분들을 도와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머지않아 ”역시 한남교회다, 한남교회 일원이 되어 참 좋다.“는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그런 교회가 되려면, 목사가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하고, 목사가 먼저 영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셋째,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5).“
 

 


바울은 교회를 우리의 몸에 비유합니다. 오장육부가 튼튼해야 건강한 것처럼, 교회가 건강해 지려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가 아니라 우리는 한 몸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 작업을 하다가 손가락을 조금 다쳤습니다. 손가락에 상처가 나니 욱신거리고, 여름철이라 혹시 덧나지 않을까 신경이 쓰입니다. 온 몸의 신경이 손가락에 집중됩니다. 손가락이 성할 때는 그저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감사한 것도 몰랐는데, 엄청나게 불편합니다. 양치할 때도, 세수할 때도, 자판을 칠 때에도 낫기 전까지 참 많이 불편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는, ‘무엇이든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감사하자’는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몸’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아픈 곳에 집중’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건강한 사회는 가장 연약한 이들을 돕기 위해 힘쓰는 사회라고 합니다. 가장 연약한 이들을 돕고 그들을 바로 세워줌으로써 돕는 이들 역시도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제가 이까짓 상처쯤이야 하면서, 손가락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 더 큰 상처가 되어 저를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건강한 사회가 사회적인 약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처럼,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가장 연약한 지체를 세워주는 일에 매진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 일을 할 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대로 하라고 합니다.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은사. 위로하는 일, 구제하는 일, 다스리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 등 각기 받은 은사가 다르니 그 모든 일을 즐거움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건강한 몸은 각자 자기의 역할에 매진합니다. 손이 발이 되려하지 않고, 눈이 머리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기의 일만 열심히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예화일 것입니다. 뱀의 꼬리가 늘 불만이었습니다. 왜 맨날 머리만 앞서가고 자기는 뒤만 따라가야 하는지에 대한 불만 끝에 하루는 자기가 앞서가겠노라고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앞서가다 보니 가시덤불에 찔리고, 구덩이에 빠지고, 나중에는 불이 붙은 장작더미로 들어가 생을 마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각기 받은 은사가 다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하십시오. 저 사람은 왜 나와 다르지 생각하지 마시고, 각자의 분량대로 은사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하시다보면 한남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엔 로마나’에 사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엔 로마나’가 시간과 공간을 가진 우리의 현실을 의미한다면 ‘엔 크리스토’는 그것을 넘어서는 가치를 가리킵니다.

‘엔 크리스토’가 의미하는 바는 첫째하나님의 은총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며둘째믿는 이들의 생각과 삶과 실천은 그리스도의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엔 크리스토’에서 비로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엔 로마나’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사는 삶이란, 자기에게 주어준 시간, 자기가 머물고 있는 삶의 자리를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그리하여, 여러분이 선 자리인,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역사를 그리스도의 뜻 안에서 아름답게 가꿔가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십시오. 그 모든 일을 하심에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새로운 생활입니다.*

 
https://youtu.be/nWSOjt5dq8c

 

http://www.podbbang.com/ch/1775820?e=23685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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