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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11주]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하나님이시라

  • 관리자
  • 2020-08-1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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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후 11주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하나님이시라
창세기 45:1~15
 


사랑의 하나님께서 오늘 한남교회에서 예배하시는 여러분들에게 큰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장맛비와 태풍으로 인해 큰 아픔을 겪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함께 하시길 기도하며 한 주 간을 보냈습니다.

이번에 수해를 많이 입은 곳은 기장의 농어촌 교회가 많은 지역입니다. 코로나 19로 힘든 상황에서 수해까지 더해지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기장 교회가 개별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한 형제자매임을 확증할 수 있는 기회로 주신 것으로 믿고, 한남교회도 형제자매 교회를 돕는 일이 더욱더 풍성해지길 바랍니다.
 




오늘 성서일과에 등장하는 요셉이라는 인물을 살펴보겠습니다.

그의 삶을 통해 어떤 부분이 그의 삶을 빛나게 했는지 발견하고, 그것을 우리는 배우면 되겠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계보에서 요셉은 어쩌면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요, 노년에 얻었으므로 그 어느 아들들보다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려서부터 당시로서는 귀하던 채색 옷을 입혔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편파적으로 사랑하자, 형들이 모두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요셉은 자기의 꿈을 형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 꿈의 내용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는데 자기가 묶은 단이 일어서고, 형들이 단이 일어선 자기의 단에 절을 한다는 것입니다. 형들은 발끈합니다. 네가 우리의 왕이 되어 다스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냐?며, 미워하는 마음이 더 커집니다. 그런데 눈치 없는 요셉은 또 꿈 이야기를 합니다. 이번엔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했습니다. ”그러자 형들은 해는 아버지, 달은 어머니, 열 한 별은 형들과 동생 베냐민이 아니냐?“며 더욱 시기합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야곱만은 그 말을 마음에 간직해둡니다.
 


요셉에 대한 형들의 미움이 얼마나 컸는지, 세겜에서 양을 칠 때,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을 온 요셉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 르우벤은 생명만큼은 해치지 말자며 에서의 후손인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팝니다. 요셉은 애굽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려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창39:2) 하는 일마다 잘 되고, 보디발도 그것을 알고는 자기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하는 가정 총무로 삼습니다. 그리하여 보디발의 집도 하나님의 복이 차고 넘칩니다. 성경은 요셉의 용모에 대하여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답다.’라고 합니다. 이때 요셉은 대략 27세 정도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하다가 실패하자 거짓으로 그를 감옥에 가둡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셔서 간수장의 신임을 얻게 하셨고,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요셉의 관원장이 꿈을 꾸었는데 도무지 해몽이 되질 않습니다. 요셉이 꿈을 해몽해 주었고, 해몽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년이 지난 시점에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도무지 해몽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때 관원장이 나서서 자기의 일을 이야기하며 요셉을 천거합니다. 요셉은 꿈을 해몽하면서, 대책까지 아룁니다. 그러자 바로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삼습니다. 그때가 요셉의 나이 서른 살이었습니다. 17세에 노예로 팔려간 후 13년만의 일입니다.





온 땅에 기근이 들고 요셉의 형들도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옵니다.
그러나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으므로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첫 번째 양식을 구하러 갈 때에 야곱은 막내 베냐민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아내 라헬을 통해서 얻은 아들이 요셉과 베냐민인데, 베냐민에게도 일이 생기면 라헬과의 모든 끈이 끊어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간첩으로 몰아세우고, 시므온을 볼모로 옥에 가두고는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곡물을 담아줄 때, 형들이 곡물 값으로 치른 돈뭉치를 그대로 넣어 보냅니다. 요셉의 형제들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이 이런 시련을 당하게 된 까닭은 20년 전 요셉에게 저지른 죄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창세기 42장 21절에서 ”그렇다! 아우의 일로 벌을 받는 것이 분명하다!“합니다.

그러나 이내 양식이 또 떨어집니다.
이번엔 그냥 자루 속에 담겨온 돈 문제도 있지만,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고, 인질로 잡혀있는 시므온은 물론이요, 자신들도 어찌될지 모릅니다. 야곱으로서는 모든 아들을 다 잃을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아비로서 자식들을 모두 사지로 내몬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차라리 굶어죽고 말지’하는 심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때 유다가 만일 베냐민에게 일이 생기면, 자신이 담보가 될 것이라며 아버지 야곱을 설득하여 베냐민과 함께 애굽으로 갑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요셉은 베냐민의 곡물 자루에 은잔을 몰래 넣어 곤경에 처하게 합니다. 이때 유다는 베냐민 대신 자신이 인질이 되겠다고 합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질투심 때문에 형제를 죽이려 했던,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았던 과거의 유다가 아닙니다. 이제 요셉도 형들을 용서해줄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하여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을 밝힙니다.
 


이번 주 성서일과를 묵상하면서 저의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5절과 8절의 말씀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5).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내신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니라(8a).”

 

이 말씀을 통해서 요셉은 긍정마인드가 충만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은 경험을 통해서 긍정성을 형성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긍정성이 충만한 요셉은 꿈을 자주 꾸고, 팔려서 노예가 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까닭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던 형제들에게 노예로 팔리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고,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 주었건만 3년 가까운 시간을 옥에서 생활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의 삶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하고, 절망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고, 애굽의 총리 자리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런 모든 과정을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우리에게는 감동이지만, 그 당시 모든 과정을 실제로 겪으며 모든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던 요셉에게는 마냥 즐거운 현실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긍정심리학의 원전으로 불리는 마틴 셀리그만의 <긍정의 심리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긍정심리학은 이미 주어진 일상의 상황에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방법을 다루는 학문입니다. 긍정심리학에서는 가장 먼저 내게 주어지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생각이 사람을 바꾼다.”고 믿으며, 자신감, 희망, 신뢰 등의 긍정적인 정서가 시련 속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고 주장합니다. 마틴 셀리그만은 1967~2000년 초까지 압도적으로 사용된 단어들을 정리해 보니 , 걱정, 불안, 우울 같은 부정적인 단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삶의 질이나 행복, 더불어 삶 같은 가치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생각’에서 온 것임을 직감한 것입니다. 인류가 가진 부정감정이 워낙 심해서 '0'의 상태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지만, +로 만들기 위해 정립한 결과가 ‘긍정심리학’입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책들은 <긍정심리학>과 관련된 책이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긍정심리학’에 관한 책을 읽으려고 한 것은 아닌데, 읽은 책들의 공통점이 ‘긍정심리학’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박상미의 <마음아, 넌 누구니>, 박재연의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김기석 목사의 <깨어나라, 너 잠자는 자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 등입니다. 아직 읽고 있는 책도 있지만, 결론은 이렇습니다.

생각이 사람을 바꾸고, 지금의 생각이 과거와 미래를 좌우한다.
자신의 긍정적인 모습을 인식하게 되면 삶이 행복해진다.
긍정적인 생각은 이웃과 나누는 삶으로 들어가고 그로인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그런데 이 모든 책의 핵심 내용을 아주 간단하고, 분명하게 정리해 놓은 요약본이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의 말씀입니다. 무엇입니까?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긍정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행복의 기본 원리와 일치합니다. ‘긍정심리학’의 기초 교재는 성경이었던 것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도 아주 중요한 소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묵상할 때 문자에 얽매이지 않으려면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만일, 요셉이 자신을 노예로 판 형제들을 원망하고, 자신을 유혹한 보디발의 아내를 원망하고, 옥에 갇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관원장을 원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온갖 사랑을 다 받고 살았는데, 형들 때문에 인생 꼬였다고 생각하며 복수의 칼날을 갈고 살았다면 그 칼날에 가장 먼저 다치는 이는 그들이 아니라 요셉이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생각이 여러분의 삶을 바꾼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지금의 생각이 여러분의 과거를 바꾸고, 미래의 삶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자신의 삶을 과거에 혹은 타인에게 저당 잡혀 살고 싶지 않다면,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미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분노, 화,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비수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비수에 가장 먼저 찔리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용서하는 것’은 이웃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한 용서를 말씀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 그러니 너를 위해서라도 용서해야 한다. 끝까지.”
 


요셉은 사실 형들을 시험합니다. 그러나 이내 그는 형들이 이전에 자신을 팔던 형들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형들의 마음을 보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을 때의 형들의 상실감, 철없이 꿈을 이야기했을 때 그 꿈을 듣던 형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첫 번째 식량을 사간 후, 그 식량이 다 떨어질 때가지였으니 최소한 몇 개월은 되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도 보고 싶고, 동생 베냐민도 보고 싶고, 어떤 결정이 아버지 야곱을 위해 좋은 것인지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형들을 용서하고자 마음먹습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상처를 망각하기 마련이고, 절대 권력을 쥔 자는 용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이 요셉의 형들에게, 요셉에게 일어났습니다.

용서를 하고나니 요셉은 비로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5).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내신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니라(8a).”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용서하십시오. 그것이 자신을 위하는 길이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열쇠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긍정적인 모습을 인식하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는 ‘감사’가 없다고 합니다.
감사의 반대말은 불평, 불만이 아닙니다. 감사의 반대말은 당연히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관찰해보면 감사할 것 천지입니다. 그러면, 그냥 마음으로만 “감사합니다!”하지 말고, 문장으로 표현해보십시오. “이러이러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만큼, 긍정성도 커가는 것입니다. 뇌과학에서 하는 이야깁니다.


“나를 칭찬하고 감사할 일을 자꾸 찾다보면, 우리 뇌는 남을 볼 때도 칭찬할 일을 찾고 감사할 일을 찾게 된다.”
 


여러분, 자신을 칭찬하고, 감사한 일을 찾다보면 나에 대한 자긍심만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뿐만 아니라 타인도 그런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남을 인정하게 되고, 남을 인정하는 사람은 또한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정한다.’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지 마십시오.

‘지금의 나도 충분하다.’고 자신을 칭찬해 주십시오. 그 일의 시작은 ‘감사’입니다. 요셉은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보디발에게 간수장에게 바로에게 인정받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이라고 우리에게 전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를 도우시길 원하십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이 우리 삶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고백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나를 이리로 보내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이 두려워서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살아가겠습니까? 그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고, 용서하시고, 감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요셉처럼 도와주실 것입니다.*

 

http://www.podbbang.com/ch/1775820?e=23667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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