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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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주일/환경주일] 마음의 눈을 뜨면(ppt영상설교 포함)

  • 관리자
  • 2023-06-0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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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주일(환경주일 20230604)
마음의 눈을 뜨면
시편 8:1~9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은총이 삼위일체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하시는 모든 분에게 임하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이며 환경주일입니다. 삼위란,  성부, 성자, 성령이며, 일체란 인간이 하나님을 성부로도 표현하고, 성자로도 표현하고, 성령으로 표현하지만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가 내 안에 계신다.’고 고백할 때에,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과 네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특별히 6월 첫째주일을 환경주일로 지키는데 이것은 단순히 환경을 보호하자는 자연보호차원의 운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으며, 우리는 창조의 동역자로 부름을 받았음을 되새기는 주일입니다.
 

■ 초월하시며 내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시고 모든 피조물 속에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을 인식하든 못하든 하나님은 현존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분이시지만, 하나님은 ‘바로 여기에’ 계시고 ‘내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초월하시면서 내재하시는 하나님, 그 둘 중 하나만 진리하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균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현실, 지금여기에서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면, 이 땅이 추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은 하늘의 것을 구하는 삶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 하나님의 편지


하나님의 신비는 온 우주에 충만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손길과 숨결이 내재해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에게 “살아가라!”명령하셨습니다. ‘살아가라’는 명령이 바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메신저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편지’입니다. 하나님의 편지는 작은 들꽃 한 송일 수도 있고, 사건일수도 있고, 자연현상일수도 있고, 어떤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뭔가를 보고 경탄하고, 감탄하고, ‘아하!’하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 우리 마음의 눈이 비로소 뜨이는 것입니다. 
 

■ 마음의 눈을 뜨니


구상 시인의 <마음의 눈을 뜨니>라는 시의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제까지 그 모습, 그대로의 만물이
그 실용적인 이름에서 벗어나
저마다 총총한 별처럼 빛나서
새롭고 신기하고 오묘하기 그지없다.

무심히 보아오던 마당의 나무,
넘보듯 스치던 잔디의 풀,
아니 발길에 차이는 조약돌 하나까지
한량없는 감동과 감격을 자아낸다.


‘실용적인 이름에서 벗어나’라는 것은 자기의 이익과 이해관계를 벗어나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니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는데, 마음의 눈을 뜨니 새롭고 신비하고 오묘하고 한량없는 감동과 감격을 자아내는 것입니다.
 

■ 노년의 아름다움


구상시인은 고희가 지나 아내가 죽고, 장남이 사망하고 자신도 두 번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합니다. 그 후 팔순에 들어 신앙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마음의 눈을 뜨니’라는 시는 그 중 하나입니다.

1938년생 황동규 시인은 팔순이 넘어서 매년 유고집이라 생각하고 시를 쓴다고 합니다. 팔순이 되니 비로소 사물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시 ‘오늘 하루만이라도’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은행잎들이 날고 있다.
또 하나의 가을이 가고 있군.
은행잎! 할 때 누가 검푸른 잎을 떠올리겠는가?
나뭇잎은 대개 떨어지기 직전 결사적으로 아름답다.
그래, 그나 나나 다 떨어지기 직전의 나뭇잎들!

시인은 1938년생인데, 이 시가 발표된 것은 2020년입니다. 82세 노년의 삶이 결사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고, ‘오늘 하루만이라도’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8층 아파트 계단을 쉬엄쉬엄 올라가는 모습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 기적의 의미


노년의 삶을 품위 있게 살아가는 분들은 한결같이 ‘마음의 눈을 뜬’분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나만 잘되면 그만이고, 나만 잘된다면 이웃이야 어찌되든 말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진실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파우스트박사처럼 메피스토델레스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부와 명예를 얻으려고 합니다. 광야에서 유혹자의 세 가지 유혹을 물리친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이들이 오히려 그런 유혹을 구하고 있습니다.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시대, 이런 시대에 눈이 멀면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고, 들어야할 것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니 말하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 눈먼 자가 눈을 뜨고, 언어장애를 가진 이들이 말을 하고, 걷지 못하던 자들이 걷고, 팔이 굽은 자가 팔을 펴는 기적은 단지 신유의 기적체험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기적을 신유의 기적에 가두는 것은 예수님의 복음을 가두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 창조의 동역자


우리는 예수님을 왜 믿습니까?
예수님을 믿어 편안하고, 넉넉하게 살고, 성공하고, 죽어서 천국가기 위해서 믿습니까? 그것이 끝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무엇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입니까? 하늘의 일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동역자를 부르시어 창조사역을 함께 하십니다. 창조의 동역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근거는 창세기의 에덴동산을 창설하실 때 아담에게 맡기신 일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시편의 말씀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6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주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주께서는 사람이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표준번역).”
 

■ 사람이 무엇이기에


시편의 시인은 ‘사람이 무엇이기에’ 기억하시고, 돌보시고, 이러한 사명을 주셨는지를 감탄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하늘과 별을 바라보니,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들과 주님의 손으로 만드신 온 우주를 바라보니 인간은 티끌에 지나지 않는데,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것을 다스리게 하셨는지 놀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바라보며 감탄하고 놀라는 시인은 ‘마음의 눈을 뜬 사람’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니 온 세상에 충만한 하나님의 위엄이 보이고, 신비스러운 자연이 보이고, 그 속 티끌 같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경웅은 시편 8편을 주해하면서 ‘정관(淨觀)’이라는 단어를 제시합니다. 정관이란, ‘맑게 바라보기’ 혹은 ‘고요하게 바라보기’입니다. 
 

■ 오경웅의 시편사색


그는 시편 8편의 첫 구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고요한 눈매로 세상 이치 살펴보면 천지 기상의 오묘함이여, 상서로운 기운은 하늘에 찬란하고 별과 달 요요히 빛을 발하네.”

참으로 동양적인 감성을 담은 시적인 표현입니다.
‘고요한 눈매’ 그것이 정관입니다. 고요한 눈매로 바라본다는 것은 선입견이나 어줍지 않은 지식이나 판단 없이 보는 것입니다. 이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리게 됩니다. 이것이 눈뜸의 기적이요,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는 기적입니다. 보고 들었으니 말하게 되고 말하니 어눌하던 혀가 풀리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 텃밭에서


지난주 월요일, 텃밭을 보니 괭이밥이 온통 뒤덮었습니다.
전날 비가 온 뒤라 땅이 촉촉하여  잡초 뽑기에 안성맞춤입니다. 뿌리까지 쑥쑥 뽑히는 괭이밥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 적당하게 자라주었더라면 뽑히는 신세를 면했을 터인데 하는 생각도 들고, 심지도 않은 잡초는 무성하게 자라고 심은 가꾸는 채소는 비실비실하니 내 마음을 보는 것도 같고, 잡초를 뽑아낸 만큼 깨끗해진 밭을 보니 분명히 이전보다는 채소가 더 실하게 자랄 생각에 기쁘기도 하고, 뽑고 또 뽑아도 잡초가 자랄 것이니 회개역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도 가꾸지 않고 방치하면 잡초가 무성한 밭이 될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잡초를 하나 둘 제거하다보면, 어느새 잡초를 능가하는, 잡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라나는 채소를 보게 될 것입니다. 비록 잡초가 있긴 있지만, 배추밭이고 무밭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 밭에도 여전히 잡초 같은 죄가 있겠지만, 하나님이 보시고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라고 하실 것입니다. 
 

■ 꽃밭에서


꽃밭을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 가지 꽃과 여러 가지 색깔의 꽃이 어울려 피어나는 꽃밭이 더 아름답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게 됩니다. 그리고 꽃밭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무리 잘 가꾸는 꽃밭이라도 잡초도 있고, 상한 꽃도 있고, 심지어는 썩은 가지도 있고, 벌레도 있습니다.

꽃밭은 아름다운 것만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포용하여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것이 꽃밭의 매력입니다.
 

■ 바다에서


저는 바다에 서면 수많은 생각을 합니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바다가 세상의 가장 높은 하늘과 맞닿아있는 신비를 보면서 섬김과 낮아짐에 대해 묵상을 합니다. 더러운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지만 더러운 물을 마침내 정화시키는 바다를 보면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마음에 대해 묵상합니다. 태풍이 오면 심연의 밑바닥까지 다 뒤집어 다시 깨끗해지는 바다를 보면서는 삶의 고난의 의미를 되새깁니다. 3.5%의 염도를 생각할 때에는 3,5%의 제대로 된 신앙인과 교회를 생각합니다. 3,5%의 신앙인, 3,5%의 한남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장엄한 일출과 일몰을 볼 때면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살자고 다짐합니다.
 

■ metanoia(회개)


우리는 자연에 비교하면 티끌에 지나지 않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연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다스림의 권세는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자연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동안 서구신학은 ‘다스리라’는 말씀을 오용하여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것에 대한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그 결과를 오늘날 우리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라도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가 주는 사인을 잘 알아듣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돌아서서 제 길을 가는 것, 그것이 바로 메타노니아, 회개입니다. 
 

■ 마음의 눈을 뜨면


하나님은 우리를 온 천하보다도 귀한 존재라 하시고,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십자가 고난을 당하게 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녀라 부르시고,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그 안에 거하실 바라십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랑하시는지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이라면, 그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죄인이든 아니든, 그 누구든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또한 우리의 이웃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지내야겠습니까? 이것저것 내세워 혐오하고 차별하는 일은 이제 멈춰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사람답다고 할 수 있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뜨거운 마음이 성령의 계절에 여러분들 마음속에 불 같이 일어나 마음의 눈을 뜨는 역사가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음의 눈을 뜨는 일, 늦지 않았습니다. 팔순이 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고 고백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보다 더 일찍 눈을 뜬다면 얼마나 멋진 삶을 살아가겠습니까?
 

[거둠 기도]


창조주 하나님, 모든 생명이 가장 왕성하게 자라나는 여름의 길목에서 맞이하는 성령의 계절과 환경주일에 우리를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사랑해주시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해주시니 우리도 사랑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신을, 이웃을 사랑하게 하시고, 우주만물을 맑은 눈으로 고요하게 바라보며, 그들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밝은 귀를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음의 눈을 뜨면 (ppt음성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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