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후 8주(7월 26일)
마태복음 13:31~33
우리는 씨앗이요 파종자입니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식량전쟁’의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습니다. OECD-FAO(세계식량농업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OECD 상위 30개 국가 중 최하위 수준입니다. 지난 6월 24일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코로나19 이후 농식품 정책 방향과 대응 방안’이라는 포럼 개최되었는데, 우리나라는 국내 연간 식량 소비량의 약 8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돈만 있으면 식량은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COVID-19이후에는 식량수입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현재 46,7%정도인 식량자급률을 60%까지 끌어올리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식량자급률을 안정적으로 끌어올리려면 ‘씨앗’이 필요합니다. 씨앗이 없으면, 식량을 생산할 수 없으므로 ‘종자를 확보하는 일’은 곧 식량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세계적으로 씨앗과 관련한 가장 큰 기업은 미국의 ‘몬산토’라는 다국적 생화학 제조업체입니다. 유전자 변형 작물 종자의 90%가 이 회사에서 생산됩니다. ‘생화학 제조업체’에서 농산물 종자를 생산한다는 것이 의아하시겠지만, 이들은 종자를 만들뿐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종자에게만 작용하는 화학농약제품도 생산합니다. 그러니까, 몬산토라는 회사에서 만든 종자를 심으면, 몬산토에서 만든 농약만 사용해야 병충해를 막고, 수확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종자는 토종씨앗을 위협하는 물질을 배출하여 토종식물을 고사시키고, 오로지 몬산토라는 회사에서 만든 종자만 자랄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버린 다는 점입니다. 더 큰 문제는 ‘종자’는 일회용이라서, 수확물 중에서 종자를 남길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한번 몬산토 종자를 심기 시작하면, 매년 몬산토라는 회사에서 종자와 농약, 영양제 모든 것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 농산물 중에도 GMO콩, 옥수수 등은 일반화되었습니다. 유쾌한 상상은 아니지만, 몬산토의 유전자 변형 작물로 대부분 농민들이 농사를 짓는데, 만일 몬산토에서 종자공급을 중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런 지경에 이르면, 몬사토에서 부르는 것이 곧 종자의 가격이 될 것입니다.
오래전에 이런 문제점들을 갈파하고 국내에서는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운동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토종씨앗’이란, '농업생태계에서 농민에 의하여 대대로 재배 또는 이용되고 선발되어 내려와 한국의 기후 풍토에 잘 적응된 식물'이라고 정의합니다. 따라서 다른 지역에서 들어왔는지 여부나 얼마나 오래되었는지가 토종의 기준은 아니고, 지역 풍토에 얼마나 잘 적응되었는지가 토종씨앗의 기준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토질에 잘 적응된 씨앗을 지키는 일, 그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는 일입니다. ‘농업인협동조합(농협)’같은 곳에서는, 이런 일에 앞장서야하는데 ‘대부업’이 본업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문제들이 현실이 되고나서야, 후회를 한들 이미 늦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그렇습니다. 예언자들의 수없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멸망하고 나서야 비로소 ‘예언자의 예언’이 참이었음을 깨닫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천국의 비유에 관한 말씀입니다.
천국은 겨자씨와 같고, 천국은 누룩과도 같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도 믿음과 관련하여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에게 ‘겨자씨’는 작은 것, 변변치 않은 것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씨앗’이라는 말씀은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겨자씨의 상징과 대비되는 나무가 있습니다. 그 나무는 백향목(삼나무)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로부터 하나님 나라, 천국을 백향목에 비유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로마 권력과 그에 빌붙어 살아가던 몇몇 특권자들은 부족한 것 없이 살아갔으니 천국의 상징은 당연히 하늘을 찌를 듯 크고 우람한 ‘백향목’이었을 것입니다. 스스로도 백향목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 생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로마의 식민지로 살면서 대다수 이스라엘 사람들은 겨자씨 같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변변치 않은 삶, 소외된 삶, 가난한 삶, 주변부의 삶을 사는 이들은 그야말로 겨자씨와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스스로도 겨자씨만도 못한 삶을 살아간다 생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천국을 백향목과 같다 하지 않으시고, 겨자씨와 같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이 말씀을 읽으면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됩니다.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의 말씀은 ‘백향목의 세상을 전복하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겨자는 종자 자체가 풀입니다. 그러므로 나무가 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마태복음 17장의 ‘겨자씨만한 믿음’을 함께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됩니다. 마태복음 17장에서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무엇을 옮길 수 있다고 하십니까? 산을 옮긴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인류역사에서 믿음으로 산을 옮긴 사건이 있었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산보다 무거운 것이 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산보다 더 무거운 것이 우리 몸이고 마음 아닌가?”라고 질문하면서 “산을 움직이는 믿음은 사실 나를 움직이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으로 산보다도 더 무거운 마음을 움직인 사람들을 수시로 보고 있지 않습니까? 겨자씨만한 믿음이 산보다 더 큰 마음을 변화시켜 새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기적은 우리의 일상에 편만합니다.
겨자씨가 나무가 되고, 겨자씨만한 믿음을 산을 옮기는 일은 나의 가능성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능성으로 보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보다 더 큰 일도 가능합니다. 우리는 나의 가능성만 믿고 살아가면서, 산은커녕 작은 장벽도 옮기지 못하고, 간장종지만한 마음도 못 바꾸며 ‘나는 절대로 나무가 될 수 없어!’라는 자기의 가능성 속에만 갇혀서 옹색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나의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능성을 의지해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의 가능성을 의지해서 살아가면, 산보다 더 큰 우리의 마음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겨자풀에 불과한 우리들이 새들이 깃들어 쉴 수 있는 품을 가진 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나의 가능성으로 바라보면, 겨자씨나 누룩 같아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고, ‘내가 이런다고, 당신이 그런다고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겠어?’ 반문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가능성을 의지하면 하나님 나라는 실현되는 것입니다.
겨자씨가 자라 공중의 새들이 깃들만한 나무가 되고, 누룩의 양은 아주 작지만, 가루 서 말을 부풀게 한 것처럼, 인간의 생각으로는 가늠할 수 없었던 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는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작은 것이 무엇일까요?
‘씨도리배추’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씨도리 혹은 씨도리배추는 씨를 받기 위하여 밑동만 남겨둔 배추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씨도리에서 씨앗을 얻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 뿌리만 남겨두고 배추 윗부분을 몽땅 베어버립니다. 그렇게 하면, 뿌리만 남아 꽁꽁 언 채로 겨울을 견딘 후, 봄이 오면 긴 줄기를 내고 꽃을 피웁니다. 이것을 장다리곷이라고 하는데, 꽃이 피고 진자리에는 콩꼬투리보다는 작은 씨방이 생기고 씨방에서 씨앗은 검게 익습니다. 씨앗이 익어갈 무렵이면 줄기와 씨방이 누렇게 변하는데 이것을 베어서 햇볕에 잘 말려 털면 작은 씨앗을 얻습니다.
‘저온처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씨앗을 영하 15도 이하에서 보름이상 보관하는 것인데, 씨도리배추처럼 겨울을 나지 않고 씨앗을 거둔 씨앗은 반드시 저온처리를 해야만 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결국, 씨도리배추나 저온처리나 ‘겨울의 흔적’, 즉 ‘고난이나 시련’이라는 옹두리(상처)를 몸에 새긴 것들만이 생명을 품는 씨앗이 된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입니다.
황금만능주의 세상에서,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올곧은 삶을 살다가 씨도리배추처럼 잘려나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로 거룩한 씨요, 그루터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가능성입니다. 봄이 오면 어김없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농부처럼, 하나님은 절망의 땅에 쟁기질을 하시고 희망의 씨앗, 정의의 씨앗을 뿌리시는 것입니다. 그 씨앗은 겨자씨처럼 작고, 가루 서 말 속의 누룩같이 미미하지만, 능히 나무가 되어 새가 깃들이고, 가루 서 말을 부풀게 하여 많은 이들의 양식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에서 강조하는 바는 ‘겨자씨 한 알 같은 사람, 가루 서 말 속의 누룩과도 같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뤄간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씨앗을 뿌리는 농부처럼 겨자씨를 뿌리시고, 가루 서 말에 누룩을 넣고 반죽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이뤄 가시길 소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여전히 ‘이 땅위에 이뤄지이다.‘라는 기도처럼 진행형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비유의 말씀은, 너희들이 겨자씨가 되어야하고, 누룩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씨앗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파종하는 농부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씨를 뿌리신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신 후 파송자의 사명을 우리에게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거룩한 씨앗이 되고, 거룩한 씨앗을 뿌리는 파송자가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저절로 기도의 사람이 됩니다. 이 세상의 것들을 중심에 놓고 살아가면 욕망의 노예가 되지만,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살아가면, 그분이 모든 소망의 근원이 됨을 깨달아 알게 됨으로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살아간다는 것은 삶의 지향점이 하나님을 향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향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은 매일매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이웃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웃에게 참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결국,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은 이웃에게 다가가고,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다가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의 욕망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자기의 욕망을 거스르는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리의 ’마음씨‘가 달라집니다. 마음씨가 달라지면 우리의 마음에 정의의 씨, 평화의 씨, 용서의 씨, 섬김의 씨, 나눔의 씨, 돌봄의 씨가 생겨납니다. 이런 씨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거스르는 일이요, 황금만능주의 세상을 거스르는 일이므로 시련과 인내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씨앗은 겨울과도 같은 고난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볼 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겨자씨만한 것일지라도, 우리의 가능성으로는 별 것 아니지만, 하나님의 가능성 앞에 서면 새들도 깃들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나는 오늘 어떤 씨앗을 뿌렸는가?” 돌아보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내가 거두는 오늘의 열매는 언제가 뿌린 씨앗의 결과입니다. 우리 인류가 지금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그동안 뿌려온 씨앗의 결과입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과 편리에 눈이 멀어 GMO씨앗을 수입하고, 토종씨앗을 포기하고, 더 많이 거두기 위해 땅에 화학비료를 쏟아 붓는 일은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습니다. 에덴의 동쪽에서 작금에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인간의 가능성으로 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가능성을 믿기에, 내 안에 거룩한 씨앗을 만들고 파종하기 위해 힘쓰고, 그런 일을 하는 이들과 연대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나는 오늘 어떤 씨앗을 뿌렸는가?‘ 돌아보면서 하루를 정리하십시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나는 오늘 어떤 씨앗을 뿌릴 것인가?“생각하고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그래야, 우리의 마음씨에 거룩한 씨앗들이 생깁니다. 이것이 종자가 되어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거둠기도]
하나님, 우리는 지금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염병의 창궐과 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와 기후변화의 위기 속에서 그간 우리는 어떤 씨앗을 뿌리며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가능성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면 절망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하나님의 가능성으로 바라보면 아직도 희망이 충만한 세상입니다. 주님, 우리가 거룩한 씨앗이 되게 하시고, 거룩한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농부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우리 삶이 중심으로 삼고,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서, 이웃 앞에서 오늘 뿌린 씨앗을 돌아보며 살아감으로 매일매일의 삶의 성화의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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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