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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감사주일] 감사하는 자가 되라

  • 관리자
  • 2020-07-0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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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맥추감사주일(7월 5일)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로새서 3:15~17
 



한 해의 상반기를 보내고 남은 하반기를 시작하는 7월 첫째 주일,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유대민족의 3대 절기는 유월절, 칠칠절(오순절), 초막절입니다. 이 중에서 ‘칠칠절’이 맥추절이 되겠습니다. 맥추절은 유월절이 끝난 후 7주를 마친 다음 날 즉, 일주일의 칠 일째 되는 날, 보리를 거두어 수확의 첫 단을 흔들며 하나님께 드린 절기이기 때문에 칠칠절이라고 하였고, 첫 열매를 드린다고 하여 ‘초실절(처음 수확한 열매를 드리는 절기)’이라고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 430년, 출애굽 한 이후 광야생활 40년을 겪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후, 470년 만에 처음으로 밭에 씨를 뿌려 누군가에게 빼앗기지 않고 온전히 추수의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절기겠습니까?

그리하여 출애굽기 23장 14-17절에는 매년 유월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을 반드시 지키라고 하신 것입니다. 맥추절과 관련한 말씀은 출애굽기 23장 6절에 있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출23:16)”

 


2020년 맥추감사주일은 특별한 주일입니다.

한남교회는 COVID-19 이후, 4개월 만에 온 교우가 공동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온전한 일상을 회복하진 못했지만, 이 만큼도 충분히 감사합니다. 코로나 이후, 종교가 가야할 길을 묻는 수많은 시도들이 있으니 조만간 개신교차원에서도 대책이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COVI-19 이전과 같은 형식의 일상으로 복귀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한 것은, 형식과 껍데기에 치중하던 한국교회는 가고 본질을 추구하는 교회, 말씀의 본질에 충실하던 설교자, 신앙을 삶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자리매김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비록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감사는 ‘느끼다, 감동하다, 흔들리다’라는 뜻입니다. 뭔가 마음을 쳐서 마음이 흔들리는 상태가 감사입니다. 영어 ‘feel’이라는 단어가 ‘느끼다’라는 뜻인데, 무언가가 마음을 터치해서 흔들리는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이때의 느낌이 좋으면 ‘thank’라고 화답합니다. 이 단어는 ‘생각하다’라는 단어 ‘think’에서 왔습니다. 그러니 ‘감사’라는 단어는, ‘생각해 보니 모두 감사한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덷전 5:18)”는 말씀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씀인데, 풀면, 어떤 일이라도 생각해보면 감사하지 않을 일이 없다는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생각이 많으면 번민하기 쉽지만, 생각이 깊으면 의미를 찾고, 생각이 깊어질수록 감사하게 되고, 깨달음이 깊어질수록 감사도 깊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냥 많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좋은 일이 생겨서 좋다고 느끼는 감정과 감사함을 느끼는 감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인간에 대한 정의 중에서 ‘감사를 찾는 존재’라는 정의가 있습니다. 그냥 일상인줄 알았는데 마음의 눈을 떠서, 마음의 눈에 쓰였던 백태(白苔)가 벗겨지니 모든 것이 감사하고, 심지어는 감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상황에서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범사에 감사하게 되면, 감사의 열매가 풍성해 지기에 ‘감사는 감사의 씨앗을 심는 일’이라고도 합니다.


요한복음 4장 3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조금 난해한 말씀입니다. 씨를 뿌린 사람이 거두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두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지금 우리는 우리가 뿌리지도 않은 감사의 열매를 거두는 중’이라는 말씀입니다. 조금 쉽게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인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일제강점기에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한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는 후손들은 자주독립국가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요, 한국전쟁 당시 공산주의와 맞서 싸우며 죽어간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민족의 독립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몸 바쳐 헌신한 분들은 ‘씨앗을 심은 분들’이라면, 그로인해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그들이 뿌린 씨앗을 거두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나의 몫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들도 깊이 생각해 보면 누군가 심고 가꾼 것을 거두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하는데, 자식들은 누구나 ‘그림자노동’의 빚을 지고 있듯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사의 씨앗을 뿌린 누군가의 열매를 먹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의 노력과 헌신을 또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가 거둬 살아가는 것입니다.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과의 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햇볕과 바람과 비를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오, 그것들이 불어놓은 생명을 우리 인간이 누리고 먹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언제나 ‘감사의 씨앗을 뿌린 이들에게 감사하는 지향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을 개인적인 욕망을 충족하는 일에만 사용하지 말고 공동체 이웃과 나누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은 나 혼자 씨 뿌리고 거둔 것이 아니므로, 나의 욕망을 충족시키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거둔 것이라도 소박하고 검소하고 적게 먹고 쓰면서 감사의 씨앗을 뿌린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것이 감사하는 자의 삶의 태도인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하면서도 많은 현대인들은 행복하게 살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만하지, 감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깊이는 곧 감사의 깊이입니다. 감사하는 만큼 행복해지고, 길이 열리는 법입니다. 불평은 불평을 낳고 감사는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하면 감사할 거리가 또 생기는 법입니다. 그리고 이런 감사는 깊은 묵상 속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 깊은 생각의 끝에 다다르면, 감사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됩니다. think에서 thank가 온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을 깊은 감사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아주 낮은 수준의 감사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교감사 때문에 그렇습니다. ’비교감사‘란 ’저들과 같지 않아서 감사합니다.‘라는 것입니다. 이웃이 아픔을 당했을 때, ’나는 그렇지 않아 감사합니다.‘하는 것이지요.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볼까요?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 18:11).”

 

이런 감사는 나주 낮은 단계의 감사입니다. 우리는 좀 더 성숙한 감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구상 시인은 ’은총에 눈을 뜨니‘라는 시에서 ’나의 無能과 無力도 은총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성숙한 감사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오늘 우리가 읽은 골로새서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것들로 채워진 우리의 마음을 비우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 우리 삶을 주장하게 하십시오. 이렇게 하면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십시오. ’풍성히 거한다.‘는 말씀은 ’스며들게 한다‘는 뜻입니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스며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흠뻑 젖은 사람은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 무슨 일을 하든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십시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함부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하는 행동으로 예수님이 드러나야 합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럽힌다면 아무리 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작은 일 하나라도 예수님이 하시는 것처럼 정성을 다하십시오. 그러면 감사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권면하면서 또 두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하나는, 우리는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이웃에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감사하기 전에는 내 필요도 부족하지만, 감사하게 되면 나눔으로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는 중에 자신이 가진 것으로 자족하며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서로 가르치며 권면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서로‘라는 단어는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교회가 할 일은 서로 가르치며, 권면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러는 중에 또한 우리는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삶을 돌아보십시오.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을지라도, 그런 중에 감사한 일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도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때, 감사한 일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힘든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았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 켐퍼스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감사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며, 그의 축복을 교만한 자의 손에서 거두시니 겸손한 자에게는 언제나 축복을 허락하신다.‘

교만한 자는 감사를 모릅니다. 모두 자기가 이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아무리 큰일을 이뤘어도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이라고 고백하니 감사하게 됩니다. 나의 노력만으로 된 것이 아니므로 감사하며,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오.

감사하면 길이 열리고, 감사하면 감사할 거리가 또 생기는 법입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감사할 모든 것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한남교회에서 맥추감사주일을 지키시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어떤 이유로 우리를 한남교회로 보내셔서 예배하게 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감사하는 자‘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지난 상반기 동안 새해를 시작하며 이루고자 하시는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 일 중에 ’이전보다 더 감사하는 자가 되자‘라는 목표도 있었습니까? 인생의 성공은 ’감사하는 것이 많은 삶‘이 아닐까요? 혹시, 이런 목표가 없었다면, 하반기에는 ’감사는 자‘가 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결단하시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삶을 도우셔서 감사할 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런 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십시오.*

 

[거둠기도]

범사에 감사하라 말씀하시는 하나님, 돌아보면 우리의 삶은 감사할 것으로 둘러 쌓여있는데, 우리의 눈이 어두워 불평하며 살았습니다. 남과 비교하며 살아가다 주신 감사도 누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행복의 깊이와 감사의 깊이는 다르지 않은 것인데도, 행복한 삶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주님,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맡기신 소명이 있으니 살아가게 하심을 믿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를 주장하게 하시고, 늘 하나님의 말씀에 젖어 살게 하시며, 무슨 일을 하든지 그리스도인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감사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

 

http://www.podbbang.com/ch/1775820?e=23589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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