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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주일] 사랑의 레가토 Legato of Love

  • 관리자
  • 2020-05-31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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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레가토(성령강림주일 5월 31일)
에베소서 4:13-16


*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부활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 떨며, 낙심하여 이전의 삶으로 돌아간 제자들을 만나 부활을 확증하시고 다시 제자로 세우신 후에 승천하십니다. 승천하시면서 예수님은 고난 중에 놀라지 말라고 하시며 격려하시고, 자신을 대신하여 제자들의 삶을 독려하고 도와주실 보혜사 성령님이 함께 하실 것임을 밝히시며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의 사명을 회복시키시고 승천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오심으로 성령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성령이 강림함으로, 제자들은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두려움 없이 예수님을 전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이방인인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성령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동행하는 이들은 성자 예수님을 믿고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룹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살아가셨던 것처럼, 말씀하신 대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어린 아이의 믿음에서 벗어나 그리스도가 사셨던 것처럼, 말씀하신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연결되고, 결합되어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서가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의 공동체입니다.



‘COVID-19’ 로 지난 2월 23일부터 3개월이 넘도록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며, 온라인 예배와 1,2부로 나누어 예배를 드렸습니다. 목사로서는 참으로 힘든 시기였고, 앞으로의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아직 ‘COVID-19’는 기세를 떨치고 있고, 이제는 어디에서 어떻게 전염되었는지, 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COVID-19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본래 오늘 오후부터 성가대 찬양연습을 시작하고, 내일부터는 새벽예배도 정상화하고, 수요성경공부도 재개하고, 다음주일부터는 11시 예배, 오후 찬양예배도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태원과 성수동, 금호동 등 교회와 가까운 지역사회로 확산되면서 2주간 더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예배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 노회 목사님들과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9월부터 정상화하는 곳도 있고, 새벽예배는 불특정한 이들이 통제 없이 들어올 수 있어서 못하고 있고, 교회차량도 운행할 수 없어서 주일예배를 제외한 다른 모임은 모이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남교회는 6월 첫 주부터 정상화하려고 했지만, 이태원과 물류센터, 콜센터 등의 COVID-19확산으로 2주더 연기를 하기로 임시당회에거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6월 21일부터는 예배를 정상화하려고 합니다.



제가 이런 결단을 내린 이유는 이렇습니다.

‘COVID-19’는 이제 백신이 개발된다고 해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우리의 일상에서 편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백신이 개발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COVID-19이후, 교회의 공동체성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이 시간이 길어지면, 서로를 연결해주는 이음줄이 끊어져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기간을 거치면서 그동안 우리가 드린 주일 예배는 종합예술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토요일, 교회청소를 하고, 주일 아침에 교인들을 맞이하고, 예배 전에 친교실에서 차를 마시며 대화도 하고, 먼저 성전에 들어와 기도도 하고, 예배를 마친 후, 공동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오후찬양예배를 드리는 모든 과정들이 예배요, 그래서 예배는 종합예술입니다. 예배 전에 흐르는 잔잔한 음악도, 예배의 시작을 알리는 오르간소리도, 성가대원들의 표정과 찬양도, 목사의 설교와 교우들의 화답도, 부드럽게 이어지면서 하나의 완결된 뮤지컬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이 흐름이 끊기면 예배는 깊이가 없어집니다. 그런데 한 동안 ‘설교’에 초점을 맞춘 간소화된 예배를 드리다보니 교인들과 연결되었던 이음줄이 느슨해졌습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종합예술로서의 예배가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더 기다린다고 해서 ‘COVID-19 없는 안전한’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교회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밀집되어 있는 수많은 공간들을 보면서, 한남교회는 전체가 다 모여도 그보다는 여유롭다고 생각되어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교우여러분, 위생의 문제와 믿음이 문제는 다릅니다. 수시로 교회에 마련된 손소독제도 사용하시고, 식사 외에는 마스크 착용을 꼭 해주시고, 몸이 조금이라도 불편하시면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건강회복을 최우선으로 두십시오.

 


서론이 길었습니다.

오늘 제목은 사랑의 레가토입니다.

legato라는 단어는 음악용어입니다. 끊지 않고 부드럽고 매끄럽게 연주하라는 뜻인데, 음표 위나 밑에 높이가 다른 두 음표를 서로 이어주고 있는 초승달 모양의 표가 레가토입니다. 이 기호는 slur(슬러)라고도 부르는데 두 개 이상의 음을 끊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라는 기호입니다. 레가토가 부드럽게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면, 음의 길이를 반으로 연주하는 staccato는 음을 딱딱 끊어서 특정 부분을 강조합니다. 아름다운 음악은, 레가토와 스타카토와 쉼표(rest symbol) 등 수많은 것들이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음악 용어를 알파벳 순서로 정리해 놓은 자료를 찾아보니 A4용지에 글자 크기 10포인트, 자간 160으로 정리하면 무려 13쪽에 달합니다.
 



음악용어의 의미들을 생각해 보니, 음악은 철학이요, 신학입니다.

많이 알려진 대로 ‘쉼표’는 연주하는 것만 음악이 아니라, 쉼, 공간, 여백 역시도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데 필수요소임을 알려 줍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죽어라 열심히 한다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쉴 줄 알아야 잘 사는 것입니다. 산을 오를 때에도 정상만 보고 달려가면, 숲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지만, 쉬엄쉬엄 뒤도 돌아보면서 숲길도 바라보면서 천천히 걸어가면 숲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음악용어 중에서 성령강림주일에는 ‘레가토’라는 음악 용어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제목은 김기석 목사의 묵상집 2권 <사랑의 레가토>라는 글에서 따왔습니다. 김기석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어쩌면 레카토로 창조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명의 본질은 연결이다. 어느 누구도 홀로 살아갈 수 없다. '탯줄'을 가리켜 '생명의 레가토'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이음줄(레가토)이다. 죄로 말미암아 나뉘었던 모든 것들을 이어주셨다. 견우와 직녀를 만날 수 있도록 다리가 되어 주는 '까막까치' 그는 레가토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몸이 된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4장 16절이 품고 있는 의미를 참 간결하게 표현했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깊은 의미까지 잘 표현한 문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레가토라는 이 작은 음악부호를 통해서 ‘이음 –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공동체를 설명하고, 죄로 인해 분열된 모든 관계들을 회복해야 한다는 통찰력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 생명 충만한 세상에 죄가 들어와 ‘이음공동체’를 파괴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사이를 이간질 했고, 인간 사이를 이간질 했고, 인간과 자연 사이를 이간질 했고, 더 나아가 자신과 자신을 이간질시켰습니다. 이렇게 분리된 모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으로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승천하시기 전 예수님께서는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체험한 베드로는 “불 시험이 와도 두려워하지 말고, 이상하게 여기지도 말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벧전 4:12)”며 고난 중에 있는 교회와 신도를 격려합니다. 이것이 지난 부활절 6,7주에 나눴던 말씀입니다. 이런 사람들 ‘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음을 알고, 고난의 때에도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바로 성령의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성령’이라는 개념은 왜곡되어 아주 작은 일부분이 전부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특별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일상의 삶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람, 그 사람이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견우와 직녀를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까막까치’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성령과 이웃과 이어질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음’이요, 예수님의 삶은 ‘사랑의 레카토’였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레가토’로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말씀이지만, 삶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를 각자도생으로 내몰고, 개인주의로 내몰고, 공동체성을 혐오하게 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개인에게 비수를 휘두르면서, 홀로 외톨이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생각과 다른 타인을 끊임없이 배척하고, 조금의 차이도 인정하지 않고 혐오하며 사는데 익숙합니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줍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A.C.(COVID-19, after covid-19)이후 다른 것보다도 ‘공동체성’이라는 이음줄이 와해되는 것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물론 소중한 가치지만, 이것이 단순히 질병예방의 차원에서만 행해진다면, 살가웠던 공동체성은 점점 소멸되어 갈 것입니다.
 


김원영 씨의 <희망 대신 욕망>이라는 책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타인에게 가장 오래도록 배척되었고 혐오 받았던 나의 한 부분이 내가 속한 공동체에 있는 그대로 수용될 때야말로, 우리는 진심으로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확신에 이를 것이다.”

에베소서 4장 16절의 말씀과 연결되지 않습니까?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교회는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고, 연결되고, 결합하여 사랑 안에서 세워가는 이음공동체’입니다. 한남교회가 ‘사랑의 레가토’로 든든히 서고, 여러분들도 일상의 삶에서 ‘사랑의 레가토’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http://www.podbbang.com/ch/1775820?e=23548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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