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7주/ 청년주일(202300521)
고난의 때를 사는 지혜
베드로전서 4:12~14, 5:6~1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특히 원하지 않는 고난의 시기를 견뎌야만 하는 분들을 거센 풍랑도 잔잔하게 하시는 주님께서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 승천주일을 앞둔 오늘 주신 베드로전서의 말씀을 통해서 ‘고난의 때를 사는 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것은 물, 빛, 흙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반려식물이라는 말도 있는데, 반려식물을 잘 키우려면 물, 빛, 흙 외에도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런데 자연 상태에서 물, 빛, 흙 말고 중요한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뭔지 아시는지요? 바람입니다. 바람이 불어야 가지들이 바람에 견디느라 단단해지고, 단단해져야 해충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람에 속절없이 부러지거나 넘어지지 않으려고 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립니다. 가는 줄기들은 바람에 시달리면서 단단해집니다. 그래야 나중에 줄기에 무거운 열매가 달려도 버틸 수 있습니다.
■ 넉줄고사리에 대한 단상

목양실에는 넉줄고사리가 심겨진 화분이 있습니다.
그늘을 좋아하는 식물이라 한 겨울에도 새순을 내며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는 식물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새순이 올라오질 않고 고사리철이 되었는데도 새순 하나 올라오질 않습니다. 영양제를 줘도 마찬가집니다. 원인이 뭘까 살펴보니 식물들에게는 흡혈귀와 같은, 식물의 수액을 빨아먹고 자라는 깍지라는 벌레가 넉줄고사리 줄기마다 빽빽합니다. 그들에게 피와 같은 수액을 다 빼앗기고 있었으니 새순을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도 기적인 셈이었지요. 깍지벌레가 생기는 원인을 찾아보니 ‘바람이 없는 그늘진 실내’입니다. 해결방안을 찾아보니 물을 흠뻑 주고 햇빛이 비추고 바람이 부는 곳에 두면 된다는 것입니다. 바람을 이용하는 풍매화도 있지만, 바람이 있어야 제 몸을 달라붙은 이물질이나 해충을 털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깍지벌레를 다 자게해 주고 2주가 지나자 새순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잔잔함 바람, 부드러운 바람만 있으면 좋겠는데 때로는 태풍이 오기도 합니다.
바람이 상징하는 바는 ‘고난’입니다. 그런데 이 고난은 바람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누구는 비켜가고 누구를 겨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가는 사람이라도 바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이 감내해야하는 바람보다도 더 큰 바람에 맞서야할 때가 더 많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바람에 맞설 때 혼자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있어도 넘어지고 실패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넘어졌을 때에도 하나님의 무능함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 뒤에 숨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자 하는 믿음을 가진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그래야, 바람에 실패하지 않고 바람을 디딤돌 삼아 더 단단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던 시기는 네로 황제가 지배하던 시기였습니다.
네로 황제는 로마 제국의 제5대 황제(37년~ 68년)였습니다. 베드로는 이 시기에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습니다. 64년 기름 창고 사고가 원인이 되어 로마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민심히 흉흉해지고 백성들의 황제에 대한 분만이 고조되자 민심을 잠재우려고 화재의 원인을 초대교회 교인들의 소행으로 몰아붙여 기독교인들을 대학살합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 황제 중 최초의 기독교 박해자요 잔인한 황제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초대교회 교인들은 승천하신 주님께서 속히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고, 자신들을 구원해 주실 것을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대로 주님의 시간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시간’입니다. 그 시간에 따르면 주님이 승천하시고 이틀이 채 안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시대가 어둡고, 불같은 시련이 닥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고난의 때를 사는 지혜로 살아가야 하는 거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베드로전서의 말씀은 베드로가 고난 중에서 유언처럼 남긴 편지입니다.
먼저 베드로는 ‘시련의 불길’이 우리 안에 일어나더라도 놀라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놀라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베드로 삶 속에 ‘시련의 불길’이 타오른 적이 있고, 편지를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련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에 사용된 ‘동참한다’라는 단어는 현재형으로 ‘교제하다, 생사고락을 같이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길을 거쳐 영광으로 들어가신 것처럼, 이 서신을 읽는 이들이 받는 고난은 영광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는 것입니다. 시련의 불길을 지나가며 고난을 당하는 이들은 장차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니(13), 오히려 즐거워하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으면 하나님의 영이 고난 받는 이의 위에 머물러 있으므로 복되다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욕을 당하면 복이 있습니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 시련의 불길 속에서도 지켜야할 그리스도인의 생활방식은 베드로후서 5장 6절 이하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겸손입니다(6)
‘서로’에게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서로’라고 하는 단어는 헬라어 ‘판테스παντες’를 번역한 것인데, 이 말은 ‘젊은이들 사이에 겸손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이’는 혈기왕성하고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교만해져서 남을 업신여기고 잘난 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겸손’이 의미하는 바는 젊은이의 기상처럼 당당한 믿음, 신앙을 가지되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서로에게’라는 말씀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겸손한 삶이 이뤄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더불어 사는 법을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인간이란 종끼리는 물론이요,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을 능력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암 같은 종양체로 살아가고 있으며, 지구의 종말을 재촉하는 바이러스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서로에게 겸손하게 살아가야 생명의 길이 열립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복된 삶으로 들어가시는 여러분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걱정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7)

세상의 근심걱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믿는 자라고 해서 세상의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바람이 누구에게나 불어오듯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세상의 근심걱정거리가 오기도 하고, 쓰러지게도 합니다. 심지어는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한다고 해도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이게 가능합니까? ‘주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주께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해두신 길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걱정을 하나님께 맡기면 ‘실패’가 끝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깊은 걱정이 있을 때, 그것을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맡기는 지혜를 갖고 살아가십시오.
셋째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8)

겟세마네 동산에서 졸 던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 26:41)”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그때 그 말씀이 깊이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깨어있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세상에 취해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성공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깨어서,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온갖 거짓신화들과 대적하는 것, 그것이 깨어있는 자의 삶입니다. 싸울 힘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거짓을 대적하고, 의로운 싸움을 하는 이들을 지지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깨어있는 삶입니다. 누구나 어느 자리에서든 정신차리고깨어있는 일은 가능합니다.
넷째로, 믿음에 굳게 서서 악마를 맞서 싸우라는 것입니다(9)

‘악마’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과 다른 것이 악이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악마의 실체입니다. 무슨 흉악하게 생긴 형상 정도로 악마를 생각하면 우리의 싸움을 추상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악마는 없기 때문이고, 오히려 이 시대의 악마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것 한 가지만 생각하십시오. ‘지금 내가 결정한 이 일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게 하는 것인가, 가깝게 하는 것인가?’ 악마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느슨하게 한 후에 높은 담을 쌓아 아예 끊어버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셔서 막힌 담을 허무시고, 하나님께로 우리를 돌이키게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당하는 아픔과 고난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도 다 당하는 고난입니다(9). 타인의 고난은 작아 보이고, 나의 고난은 커 보이지만, 우리의 안경 때문에 자신의 고난이 가장 큰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요, 모두 동일한 고난을 겪고 있다고 성서는 말씀합니다. 그리고 고난은 끝이 아니라 영광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이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잠깐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고난 중에 놀라지 마십시오.
고난 중에 계시는 교우들에게 베드로 전서 5장 10절의 말씀이 축복의 말씀이 되길 바랍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거둠기도]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라 말씀하신 하나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이들이 고난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임에도, 고난을 회피하며 살기에만 급급했습니다. 게다가 선한 일을 하다가 혹은 억울한 일을 당해서 고난 중에 있는 이들에게 손가락질하며 살기도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신 주님,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고난의 때에 겸손하게, 주님께 염려를 맡기고, 근신하며 깨어있으라 하시니 그리하겠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도우시어, 고난 중에서도 생명의 빛을 향해 걸어갈 수 있게 하옵소서. 고난 중에 있는 우리 교우들, 주님 위로하여 주시고,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