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여섯째 주일(5월 17일)
그 날에 너희가 알리라
요한복음 14:15~21(사도행전 17:22~31/시편 66:8~20/ 베드로전서 3:13~22)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며 사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잘못을 저지른다고 놀라지 말아야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후, ‘아 잘 못된 것이구나!’ 알게 되면 희망이 있습니다. 잘못을 안다고 해서 잘못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종종 드리는 질문이 있지요?
‘알고 짓는 죄와 모르고 짓는 죄 중에서 어떤 죄가 더 심각하냐?’는 질문인데, 모르고 짓는 죄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죄인 줄도 모르고 짓는 죄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일 뿐 아니라, 무지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무지하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지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문제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뭘 모르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가짜를 진짜로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도 ‘가짜뉴스’의 홍수 속에서 살아갑니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이유는, 진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무지보다 위험한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지도 문제지만, 그 때문에 형성되는 가짜 지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논어에는 공자와 자로의 대화가 자주 나오는데 <위정> 편에 공자가 자로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자로야,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아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7절의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는 말씀과 통합니다.
교사 생활을 오래한 친구가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의 차이에 대해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반면에,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공부하는데, 못하는 학생은 이미 아는 것을 반복해서 공부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공자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하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고 올바른 삶일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생각하고 고민하며 그 답을 찾아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내가 누구인지’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고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시고 어디서 놀고먹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잘살 수 있을까?” 이런 고민만 하게 합니다.

이런 시대의 요구에 가장 정직하게 응답하는 것은 당연히 청년들입니다. 그러니 이번 이태원 클럽에서 생긴 일들로 청년들의 행동만 비난하기보다는 이런 시대를 만든 어른들도 반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 복음서 성서일과 요한복음 14장 2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지만, ‘그날에는...너희가 알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여기서 따온 것입니다. 병행 성서일과인 사도행전 17장 22절에서 31절에는 아덴에서 전도하는 사도 바울이 종교심은 많지만, 알지도 못하는 신을 섬기는 아덴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면서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23)” 그리고 병행본문 시편 66편 8절에서 20절은 요약하면 ‘마음에 품은 것을 입과 혀로 높이 찬송하라’는 내용입니다. 즉,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삶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곧 요한복음에서 강조하고 있는 ‘주님의 계명’과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병행본문 베드로전서 3장 13절에서 22절의 말씀은 ‘선을 위한 고난’이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에 ‘고난’받을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행하는 것입니다. 그 선한 것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니 이 또한 요한복음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온전한 앎’이란, 머리 혹은 마음으로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삶으로 살아야 온전히 아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알던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머리로만 이해했던 것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이 하나 둘 쌓이면서 ‘온전한 앎’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성화’라고 합니다. ‘거룩함’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깊은 성화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사도 바울과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이 깨달음을 통해서 사도 바울의 신앙은 한 걸음 더 깊어지고 성숙해지고, 성화된 삶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오늘의 주 본문으로 삼은 요한복음의 말씀에 집중하겠습니다.
먼저, 오늘의 본문은 ‘기도의 교훈’에 이어 ‘믿는 자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생활’에 관해 말씀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합니다. 기도의 교훈은 13, 14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15절 이하의 말씀은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받는 삶’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해설인 것입니다.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입니다. 이 영적 교제가 온전하려면 그리스도를 사랑하면서 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랑의 관계에서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또한 사랑하셔서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사랑합니다!’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만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 구체적인 삶입니다. ‘지키리라’는 미래능동태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계명을 다 지킬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예수님을 사랑함으로써 그 계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성화’의 개념과 같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에게 기쁨을 주려고 행동하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의 기쁨을 위해 그의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그런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만 지키고 다 지키지 못한다고 실망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십시오. 그 마음을 지키다 보면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삶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은 이집니다.
16절: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보혜사는 어떤 사람을 돕기 위해 부름 받은 자, 위로자, 중보자, 대언자, 다른 사람의 소송을 변호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보혜사는 우리의 편에 서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변호하고, 힘을 내서 그의 계명을 지키도록 이끕니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셨을 때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보혜사였지만, 이제 세상을 떠나시니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 분을 우리는 ‘성령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17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여기서 ‘그는’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는 ‘성령’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본질은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조금 건너뛰어 오늘 제목으로 삼은 20절 이하의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날’은 성령의 새로운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요,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뤄지는 날, 성화가 완성된 그 날을 의미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 날에 무엇을 알게 되는 것입니까? 오늘 말씀에 따르면 다음 세 가지를 알게 됩니다.
1) 아버지와 아들과 믿는 자 사이에 완전한 영적 일치가 이뤄진다는 것(20)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2)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3) 아버지 사랑과 아들의 사랑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21)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는 성부 하나님께서도 사랑해 주시고, 성자이신 예수님께서도 사랑해 주시고, 성령이신 보혜사께서 그의 삶을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큰 사랑을 품으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겠습니까?” 우리는 별 볼일 없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시는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온전한 앎이 되려면 그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함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고자 할때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도우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험한 세상, 혼자 힘겹게 살아가지 마십시오. 여러분 안에 내재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십시오. 보혜사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을 도우실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이 귀한 복음의 말씀 안에 거하셔서, 기도하시는 대로 모든 것을 응답받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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