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노릇, 자식구실
에베소서 6:1~4
영상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장로님의 특별찬양 ‘축복하노라’의 가사가 오늘 주님의 전에 나와 예배하시는 모든 분들과 가정에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목사는 별 고민을 다하는데, 그 중 하나가 설교 제목을 정하는 일입니다.
설교 제목을 어떻게 정하는가에 따라, 설교의 큰 틀이 잡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부모노릇 자식구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노릇’의 사전적 의미는 ‘그 역할과 구실을 낮추어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니 사실 구실이나 노릇이나 역할이나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양쪽에 같은 단어 ‘역할, 구실, 노릇‘을 쓰면 제목이 너무 밋밋합니다. 그래서 같은 의미의 단어를 섞었는데, 같은 단어라도 한 쪽이 낮춰 부르는 말이니, 어느 쪽에 ‘구실’을 붙이고 어느 쪽에 ‘노릇’을 붙여야할지 제목을 정하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고민 끝에 부모의 역할은 ‘노릇’이고, 자녀들의 역할은 ‘구실’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식들을 위해서는 부모가 못할 노릇이 없고, 자녀들은 아무리 효도한다고 해도 자식구실을 다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더 근원적이고 섬긴다는 의미를 담아 ‘부모노릇’이라고 한 것이니 혹에라도 제목 때문에 부모님들은 서운해 하진 마십시오.
함께 보신 영상은 몇 년 전에 나왔던 모 회사의 ‘한우광고’입니다.
젊은 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손길이 남은 마지막 반찬을 먹는 그 느낌은 어떤 것일까요? 이후, 취업도 하고 결혼한 딸은 늘 홀로 사는 아버지가 늘 걱정입니다. 아내 승진 기념으로 남편이 이벤트를 만들어 아버지와 데이트할 시간을 주고, 저녁엔 남편이 손수 차린 밥상에 한우를 올린다는 내용입니다. 광고가 아니라 무슨 영화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호르몬의 변화로 감성이 점점 풍성해지는 까닭인지 설교준비를 위해 이 영상을 보면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오늘 울지 않으려고 한 열 번은 넘게 본 것 같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일도 부모를 사랑하는 일도 살아생전에만 할 수 있습니다.
청개구리처럼 부모가 죽고 나서야 후회를 하고, 죽은 뒤에도 문자에 매달려 끝내 부모에게 불효막심한 자식이 되진 마십시오. 자식을 사랑하되 자신의 생각대로 사랑하지 마시고, 성경의 가르침을 늘 기억하십시오. 살아생전에 서로서로 사랑하시고, 그로인해 행복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풍성하게 누리십시오. 저는 나름 효자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던 일인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나니까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그런데 이게 참 이상합니다. 돌아가신 후, 몇 년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더 선명해 집니다.
‘조금만 더 잘해드릴걸....’
여러분,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지금 효도하시고, 자녀가 살아있다면 지금 사랑하십시오. COVID-19의 습격처럼 당연한 일상으로 생각하던 것들이 언제 깨어질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을 살아가십시오. 오늘을 잘 살아간 사람에게 내일도 잘 살아갈 가능성이 더 많이 열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의 말씀은 출애굽기 20장 12절과 신명기 5장 16절에 나오는 말씀을 사도 바울이 인용한 것입니다.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것’, 이것은 복 받은 삶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삶입니다. 성서는 그 비결을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고 싶다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길 원한다면,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습니다.
세상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비결을 이렇게 가르쳐 주지 않으며,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는 어림없는 것이라고 겁박합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서는 잘 사는 것을 ‘돈이 많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장수하기 위해서는 온갖 좋은 비타민제와 건강식품을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합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에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가르쳐야 한다면, ‘웃기는 소리, 학원을 보내야지!’합니다. 이 모든 것이 자본주의의 상술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앞에서 본 영상은 결국 ‘한우’를 광고하는 영상인데, 감동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비판적으로 보면 ‘공장식 축산’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주 안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Respect your father and mother(GNT-Good News Translation).”

존경, ‘respect’는 라틴어 ‘respicio’에서 온 말입니다. 뜻은 ‘본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존경이란,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인정받는 사람은 큰 용기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가 내게 무엇을 해 주었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부모이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용기를 주고, 자부심을 품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부모를 위한 일일 뿐 아니라, 결국에는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를 공경하면,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어 성경에는 공경이라는 말을 ‘respect’라고만 해석한 것이 아니라 복종을 의미하는 ‘obey’라고도 번역을 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십계명은 두 개의 돌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돌판은 신과 인간에 관한 네 가지 계명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돌판은 인간과 인간에 대한 여섯 가지 계명입니다. 그런데 부모를 공경하라는 5계명은 두 번째 석판의 맨 처음에 놓여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부모 공경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관련이 있다고 밝힙니다. 성경에 나오는 부모 공경을 포함한 모든 공경 혹은 순종은 하나님에 대한 공경과 순종을 목표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삶은 부모 공경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부모를 공경함으로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복’을 자녀들이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존경, 순종과 반대되는 말은 ‘교만’입니다. 교만하면 순종하지 않고, 누구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교만이란, 하나님과 같이 자신을 높이고 싶은 마음이요, 인간이 신과 같이 되려고 자기를 높이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본성과 은총>이라는 책에서 “모든 죄의 시작은 교만이다. 그리고 교만의 시작은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것이다. 이것이 죄의 뿌리이자 시작이다.”고 했습니다. 잠언 18장 12절에도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하시면서 ‘교만’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만을 없애고 겸손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에서의 순종은 구원의 길과 통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부모 공경은 교만을 극복하고 순종을 배우는 훈련이자,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지름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 공경을 통해서 가장 큰 유익을 얻는 것은 공경하는 자요, 순종하는 자인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자녀들아 주 안에서(in the Lord...)”라는 말씀이 분명하게 있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공경이나 순종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부모공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한 수단임을 분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상의 권세 혹은 권위’에 순종하라는 바울 서신의 말씀도 제대로 보입니다. 모든 존경과 순종과 복종은 하나님을 존경하고,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을 공경하십시오, 자녀를 또한 존중하시고 주님 안에서 가르치십시오. 이것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부모 공경도 자녀 사랑도 살아있을 때 외에는 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모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비밀을 깨닫길 바랍니다. 자녀들을 세상 질서에 순종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함으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셔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안에 거하도록 도우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자녀들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누리게 하는 부모노릇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님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시고, 여러분이 생각할 때 혹여 못난 부모라고 생각된다고 해도 존경하십시오. 그것이 자식구실입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이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부모님과 자녀들에게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이 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