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질 하시는 하나님(어린이 청소년주일)
히브리서 13:21
하나님의 평화와 도우심과 위로하심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특별히 함께 예배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 여러분들에게 오래전부터 준비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이뤄지길 축복합니다. 그 마음을 담아 지휘자님에게 ‘이 시간 너의 맘속에’라는 특별찬양을 부탁했습니다. 특별찬양 속에 담긴 귀한 축복의 노래가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가사 중에 ‘얼마나 너를 사랑하시는지 너를 위해 저 별을 만들고 세상을 만들고 아들을 보냈네’라는 부분은 저에게도 큰 위로와 은혜의 말씀이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냥저냥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창조된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창세전에’우리를 향한 계획을 먼저 세우신 후에, 별이며 하늘이며, 바다며 모든 것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소중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담아 지어 주셨고, 지금도 우리를 끊임없이 다듬어 주시며,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힘쓰고 계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21절의 말씀을 개역성경과 새번역 성경으로 묵상하면서 한 주간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받은바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새번역 성경의 ‘여러분을 온갖 좋은 일에 어울리게 다듬질 해주셔서’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개역성경에는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로 해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하게 만드셨고, 그것을 완성하시기 위해 지금도 다듬질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다듬질’은 ‘조각 따위를 매만지고 다듬어 끝마무리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다듬질에서 ‘다듬이질’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다듬이질’은 ‘풀을 먹인 옷감을 다듬잇돌 위에 포개어 놓고 다듬이 방망이로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구김살이 펴지고 풀기가 골고루 배어들어서 옷감이 고와집니다. 다듬이포대기에 다듬잇감을 넘어서 두 개의 다듬이 방망이로 뚜닥뚜닥 두드리면 그 소리는 또 얼마나 낭랑한지 모릅니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방망이질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셨답니다. 새번역 성경의 ‘다듬질’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다듬질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언젠가 설교시간에 ”네 삶을 조각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할 때 전해드렸던 내용입니다.
인류의 최초의 예술작품은 ‘조각’입니다.
조각에 해당하는 영어 ‘스컬프쳐sculpture’는 라틴어 ‘스쿨페레sculpere’에서 유래했는데, 스쿨페레의 의미는 ‘쓸데없고 부수적인 것을 덜어내다, 잘라내다, 쪼아서 제거하다’라는 뜻입니다. 예술가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조각품이라고 인정하는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다윗상’입니다. 다윗상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1501년 피렌체 시청의 부탁으로 5.1미터에 달하는 것으로 3년 만에 완성한 것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청의 부탁을 받고 다윗상을 만들 대리석을 찾다가 6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대리석을 만납니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커다란 대리석을 보는 순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조각상은 내가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대리석 덩어리 안에 완성되어 있었다. 그것은 이미 그 안에 있었고, 나는 필요 없는 것을 덜어냈을 뿐이다. 내 손에는 정과 망치가 있다. 나는 이 커다란 돌에서 쓸데없는 것들을 덜어낼 것이다(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가 6미터에 달하는 대리석에서 쓸모없는 부분을 떼어내자 그 안에 있던 다윗이 위대한 작품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품고 있는 대리석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가치를 드러내려면 여러분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 둘 덜어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온갖 선한 계획’이 있음을 깨닫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다른 하나는 수필가 윤오영 선생의 ‘방망이 깎던 노인’이라는 수필집에 나오는 ‘방망이 깎던 노인’이었습니다.
이 수필집 초판이 1976년에 나온 것이니, 필자의 이야기를 유추해 보면 1936년, 일제강점기 시절의 이야깁니다.
동대문 맞은 편 길가에 앉아서 방망이를 깎아 파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방망이 한 벌을 사가지고 가려고 깎아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필자가 생각하기에 값을 비싸게 부르는 것 같습니다. 좀 싸게 해달라고 했더니 노인은 퉁명스럽게 “방망이 하나가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데 가서 사우.”합니다. 그래서 그냥 잘 깎아 달라고 하면서 부탁했는데,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해가 저물도록 이리저리 돌려보고 굼뜨게 늑장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다된 것 같아서 그냥 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하고, 차 시간이 급하니 빨리 달라고 해도 대꾸가 없습니다. 의정부에 살던 필자는 차 시간도 놓칠 지경이 되어 “이제 되었으니 그냥 주소”했더니, 화를 버럭 내면서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 되나.” 필자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다는 말이요. 차 시간이 없다니까?” 그랬더니 노인은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하더랍니다.

결국,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다음 차를 타고 가리라 생각하고 “그럼 마음대로 깎아 보시오”했더니 “글쎄 재촉하면 점점 거칠고 늦어진다니까. 물건이란 제대로 깎아야지 깎다가 놓치면 되나” 그리고 한참을 더 요리조리 깎고 이리 저리 방망이를 돌려보더니 이제 다 되었으니 가져가라고 합니다.
사실, 방망이는 아까 완성되었고, 이리저리 돌려보기만 한 참을 걸렸던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기분이 상해서 ‘그 따위로 장사를 해서 장사가 될 턱이 있나. 상도덕도 없는 노인네 같으니라고’하며 집에 돌아와 방망이를 내놨더니 아내는 이쁘게 깎았다고 야단법석입니다. 집에 있는 것보다 훨씬 좋다는 것입니다. 필자가 보기엔 그게 그건데 말입니다. 아내의 설명에 의하면, 배가 너무 부르면 힘들어 다듬다가 옷감을 치기를 잘 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배가 너무 안 부르면 다듬잇살이 펴지지 않고 손에 헤먹기가 쉽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필자는 마음이 확 풀립니다.
신앙생활이란 이렇게, 조각가나 방망이 깎던 노인이 대리석이나 오동나무 속에 있는 것을 미리 보고, 불필요한 것을 쪼아내고 깎아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쪼아내고, 깎고, 다듬고, 두드리고, 문지르는 일을 통해서 우리는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완성된 나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넣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비우는 것이 아니라 덕지덕지 채웁니다. 마치, 대리석에 시멘트를 바르듯 말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에덴의 동쪽’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비극일 것입니다. 비워야 하는데, 끊임없이 채우는 것을 성공으로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완성하시고자 다듬질하시는데, 인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덧붙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데, 인간은 최선을 다해서 도망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최선과 인간의 최선이 만나는 곳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내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 나쁜 것들을 하나 둘 비우고, 놓아버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여러분의 삶을 조각해 달라고, 다듬질해주시라고 맡기십시오. 그 맡김이 바로 ‘믿음’입니다. 에덴의 동쪽에서는 자꾸 채우라고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비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린이청소년주일입니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님은 없을 것입니다. 최고의 것으로 다 해주고 싶고,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기 위해서 힘쓸 것입니다. 아마도 자녀를 향한 부모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랑한다고 했는데, 결과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오냐오냐’다 받아주었더니 예의범절 없는 아이로 자라기도 하고, 학교숙제가 너무 많아서 대신 해줬더니 자기 스스로 과제물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부모의 눈과 가치관으로 아이들을 위해 정성을 다했는데, 성인이 된 뒤에 부모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뒤처지는 것을 보지 못해서, 남들이 하는 것 다해줬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아이가 아프면 대신 아파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했는데, 아이들은 부모의 장점이 아니라 단점만 배우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것도 어렵고, 자식이 부모 사랑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되어서야 후회합니다. 이것이 ‘인간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리스도인들은 좀 다르게 살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후회하며 사는 존재로 창조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3장 21절의 말씀에 하나님은 ‘우리를 온갖 좋은 일에 어울리도록, 모든 선한 일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다듬질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게 다듬질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자신이 기뻐하시는 바를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을 후회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뻐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까지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최선입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이 다 해주시고,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하나님이 다 하셨다”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리며 사는 생명 없는 로봇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삶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의 최선과 만나 귀한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도 하나님만의 최선으로 창세전에 계획하신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어린이, 청소년 여러분, 선한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리고 부모님들은 자녀들에 대한 자신의 욕심을 비우십시오. 하나님께서 자녀들 안에 새겨놓으신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기도해 주는 것이 진정 자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남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는 아직도 만들어져 가는 중입니다. 나를 작품으로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들,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는 것을 다듬질로 쪼아내시고, 굳어진 마음을 다듬이질로 부드럽게 하십시오. 하나님은 지금도 열심히 우리를 작품으로 만드시기 위해 다듬이질 하시고 계십니다.
이미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우리를 위해 저 별을 만들고 세상을 만들고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이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여러분의 삶을, 다듬질하시어 아름답게 만들어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http://www.podbbang.com/ch/1775820?e=23497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