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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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2주] 내가 주님께로 피합니다.

  • 관리자
  • 2020-04-1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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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둘째 주일
내가 주님께로 피합니다.
시편 16:1~11 /행전 2:14, 22~32/ 벧전 1:3~9 / 요한복음 20:19~31


생명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한남교회 교우들의 가정과 고난의 시간을 살아가는 지구촌에 새 힘을 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를 택하여 주셨으니 이런 일들 조차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뤄 가시는 과정으로 믿으시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는 지난 주, 부활주일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한남교회 교우들의 신앙의 튼실함을 보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한남교회의 부활주일 가정예배 준비를 보면서 칭찬해 주셨고, 이런 아름다운 소식들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것이었으리라 믿습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함께 협력해서 평생 잊히지 않을 아름다운 부활주일을 지킬 수 있었음을 감사드리며 부활주일 둘째 주일 성서일과에 따라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2장 14절과 22~32절의 말씀을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오순절에 베드로는 유대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노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예수님이 잡히시자 도망쳤고,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자 부활하시기 전까지 숨어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죽인 예루살렘에서 부활의 주님을 담대하게 전합니다. 비루하게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도망치고, 배신하고, 숨어 지내던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담대하게 전하며 부활의 증인이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자 그의 삶이 변했고, 그의 증언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었음을 우리도 알게 된 것입니다.
 


서신서 베드로전서 1장 3~9절의 말씀은 베드로가 산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잡히시고 돌아가신 후 죽은 자와 같이 숨죽여 지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새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이제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나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뿐 아니라, 그분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산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증언한대로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슬픔을 당하게 되었더라도 산 소망을 품고 기뻐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이들의 생활입니다. 여러분, ‘코로나 19’로 인해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살아가지만, 이것이 끝이 아님을 믿고 기뻐하시며 산 소망을 갖고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고 부활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증거입니다. 그 증거를 드러내며 살아가시는 분들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서 요한복음 20장 19~31절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이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그 예수님을 만났기에 베드로가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담대하게 부활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후 첫 번째로 전하신 인사의 말씀은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인사가 지금 예배를 드리는 모든 분들께 임하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서에는 특이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의심 많은 도마’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 함께 있지 못했기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전해주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여드레 뒤에 다시 제자들이 모여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오셨습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시며, 도마에게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게 하시며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본문에는 두 가지 특이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26절에 ‘문이 잠겨 있었으나’하는 말씀이요, 다른 하나는 의심하는 도마를 꾸짖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문이 잠겨 있었다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아직도 불안에 떨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의 가르침만을 담고 있는 ‘어록 복음서’ 도마복음이 1945년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도마복음서는 114절로 이뤄진 짧은 글인데, 도마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도마가 예수님의 뜻을 가장 깊이 이해한 제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의심하는 것을 불온시 하지만, 모든 지혜의 심연은 의심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무조건 믿습니다, 무조건 아멘!”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더 깊은 믿음으로 들어가게 하는 장치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더 많이 받기 위한‘ 장치로 작용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저는 목사지만, 복을 덜 받더라도, “무조건 믿습니다!”의 신앙이 아니라 의심하더라도 확실한 신앙을 갖기를 원합니다.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29)“는 말씀이, ”의심한 후 믿는 사람은 복이 없다“는 말씀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보다 복을 덜 받는다고 할지라도, 단 하나의 복만으로도 충분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에 저는 ”무조건 믿습니다!“의 신앙을 경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정의‘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선물을 뒷전으로 하고 ”무조건 믿습니다!“한다면, 언제든지 이단사설의 감언이설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신천지에 빠져든 수많은 이들이나 이단사설에 빠진 이들, 그들은 처음에는 아주 체계적인 지정의에 따라 성경을 가르치는 것처럼 유혹합니다만, 어느 단계가 되면 교주의 말에 토 달지 않고 ’무조건 아멘!‘하게 하므로, 죽음의 길로 안내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더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믿으라!“는 식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렇게 하여 확장된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말씀으로 삼은 시편 16편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시편 16편은 ‘다윗의 믹담’이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믹담은 시편 150편 중에서 16편, 56~60편 등 총 6편인데 히브리어 ‘믹담(Miktam)’은 속죄라는 뜻을 가진 아카드어 ‘카타무’와 결부시켜 ‘속죄의 시편’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황금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케템’과 연결해서 ‘황금의 시, 주옥같은 시’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16편은 ‘황금의 시편’으로 다윗의 영적인 충만함이 가득한 시입니다. 저는 시편 16편을 다양한 번역본으로 묵상했습니다.


개역성경은 ‘최선의 선택’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시편사색>은 ‘나의 피난처이신 야훼’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새번역성경과 메시지는 ‘다윗의 노래, 다윗의 믹담’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각 번역본을 읽으면서 번역에 따라 받는 은혜도 달라서 제가 받은바 은혜의 말씀을 전하면 이렇습니다.
 

시편사색


이 땅에 거하는 거룩한 이들 제가 사랑하는 이들이오니
주님의 가르침에 함께 젖으니 그 즐거움 얼마나 풍성한지요!(3)

 

개역성경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11).

 

메시지
 


하나님, 나는 처음부터 주님만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주께서 나를 택하신 것이었습니다. 주께서 내 손을 잡으신 그날 이후로, , 바른 길에 서있습니다(11).

Ever since you took my hand, I’m on the right way.

 

<시편사색>은 시편 16편을 하나님과 오롯한 사귐의 경계를 노래한 시라고 해석합니다.



여기에서의 ‘경계’란 구분 짓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경계로 발돋움했다는 의미입니다. 성서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새로운 피조물, 새 사람’이며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한 차원 높은 경계로 들어간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갑니까?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분 안에 거하며, 그분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살아가며 새로운 경계로 들어간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리하여 늘 겸손하게 그분의 뜻을 헤아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경웅은 겸손히 헤아려 본다는 것을 俯仰(부앙)’으로 해석했습니다. 부앙은 ‘엎드려 우러른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참 자세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소위 구원의 확신이 분명한 신앙인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겸손’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교만’의 그림자만 어른거린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확신’은 최면에 걸린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신앙의 성숙을 이룬 사람은 이웃과 하나님 앞에서 늘 엎드려 자신을 살피는(俯仰) 사람입니다. 그런 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시편사색>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며 읽은 부분은 3절의 ‘주님의 가르침에 함께 젖으니’라는 말씀입니다. ‘涵咀(함저)’에 대해서는 몇 차례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젖어들어 소가 되새김질 하듯이 반복해서 말씀을 묵상함으로 말씀의 깊은 맛을 알게 되고, 삶으로 살아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홀로’가 아니라 ‘함께’젖는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코로나19’로 두 달 가까이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는 ‘함께’ 예배하는 공동체예배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습니까? ‘함께, 더불어’드리는 예배의 풍성한 즐거움을 곧 느끼는 날이 오길 기도합니다.
 


<개역성경>에서는 11절의 앞부분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암울한 상황에서 생명의 길을 보고자 하나 희미하고 흐릿하고 불투명합니다. ‘코로나19’가 가면 더 무서운 것이 올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예측합니다. 생명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시리니“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믹담으로 분류된 시편이 16편을 포함해서 총 6편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 내용들은 이렇습니다.
 


56편의 말씀은 온갖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기도’를 드리는 내용입니다. ‘두려움의 시기를 보내며 흘린 눈물을 주님의 병에 담아 주십시오.’하는 내용입니다.



57편의 말씀은 ‘환난의 때에 찬양하며 신뢰하는 내용입니다. 사울을 피해 동굴로 도망한 다윗이 ’주님의 날개 아래 숨겠사오니 나를 품어 주소서!‘하는 고백의 찬양입니다.



58편의 말씀은 ’모든 일이 잘못될 때 드리는 기도‘입니다. 지금은 모든 일이 뒤틀리는 것 같지만, ’마침내 의의 열매를 맺어 주님의 살아계심을 고백하게 하옵소서!‘라는 노래입니다.



59편의 말씀은 ’보호를 구하는 기도‘로 목숨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나의 요새이신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60편의 말씀은 ’하나님을 의존하여라.‘는 제목으로 ’하나님께 함께 하시면 승리를 얻을 것이다.‘라는 고백입니다.
 


다윗의 믹담은 ’코로나19‘로 인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살아가는 현실과도 같은 상황에서 불려진 위대한 노래들입니다. 그래서 ’속죄의 시요, 황금의 시요, 주옥같은 시‘입니다. 이런 위대한 시는 평온할 때가 아니라 고난 중에 탄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겪는 어려운 시기는 다시 우리의 신앙을 피워낼 수 있는 시간이요, 우리의 신앙을 바로 세워갈 수 있는 시기인 것입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시고, 더 깊고 맑은 신앙으로 젖어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메시지> 11절 후반부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택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주께서 나를 택하신 것입니다.‘라는 구절입니다. 내가 택한 것이 아니라, 나를 택했다. 이것이 복음의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종종 나의 선택에 의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의 결단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결단하고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택하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대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서 1장의 ’창세 전에‘라는 말씀과도 통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선하시며, 그 선한 계획은 복된 것이요, 죽음의 길이 아니요 생명의 길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택해 주셨고, 한남교회를 택해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메시지> 11절 하반절에 주께서 내 손 잡으신 그날 이후로, , 바른 길에 서있습니다.‘

이 삶이 여러분 삶에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환난의 시절에 주님께 피하는 방법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부활하신 생명의 주님을 바라보면 이 암울한 시대에도 ’산 소망‘을 품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평화의 주님이 주신 평화를 여러분 마음에 품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무조건 믿습니다의 신앙에서 한 걸음 더 깊어지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겸손하게 이웃을 대하고 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공동예배를 드리게 될 날을 위해 기도하시고,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시기지만 주님께서 먼저 나를 택해 주셨음을 믿고 담대하게 맑은 마음 지키며 살아가기시 바랍니다.
 

https://youtu.be/Da4NA6Nm4q8

 

http://www.podbbang.com/ch/1775820?e=23476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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