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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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위의 것을 찾으라(음성설교포함)

  • 관리자
  • 2023-04-0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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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9 부활주일
위의 것을 찾으라
골로새서 3:1-4


죽음을 죽이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함께 예배하시는 모든 분들의 삶에도 생명의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죽음’과 대비되는 ‘생명’은 ‘살아가라!’는 명령형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생명 충만한 삶과 연결이 됩니다.

 

■ 죽음과 삶은 한 현실의 다른 얼굴


김민기의 ‘친구’라는 노래의 노랫말에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살아있는데 죽은 것처럼 살아가는 자신과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자신보다 더 잘 사는 것 같은 죽은 친구를 회상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저도 젊은 시절 이 노래를 부르면서 ‘살아있는 사람답게 살자’는 다짐들을 했었습니다. 느닷없이 가장 아름다울 때 낙화한 동백을 보면 떨어진 꽃이 산 것인지,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꽃이 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낙화한 꽃이 더 꽃 같아서 삶과 죽음의 동시성을 묵상할 수 있는 꽃이 동백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죽음과 삶이라는 것은 한 현실의 다른 얼굴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므로, 죽을 줄 모르는 사람은 살줄도 모르고, 살줄 모르는 사람은 제대로 죽을 줄도 모르는 것입니다. 제대로 죽을 줄 아는 사람이 제대로살 것이고, 제대로 사는 사람이 제대로 죽을 것입니다. 부끄럽지만 목사생활 30년 가까이 되어서야 ‘살아도, 죽어도 주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씀의 실상을 희미하게나마 봅니다.

 

■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부활


여러분, 우리는 모두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즉, 부활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에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골로새서 3장 1절 상반절에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심을 받았으면”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개역성경의 번역에는 ‘다시 살려주심을 받았으면’이라고 해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죄와 사망의 음침한 그늘에서 죽어 있던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해 생명의 빛으로 나아와 부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부활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삶을 통해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증거하는 동시에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 부활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


그렇다면, 부활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어때야할까요?

1절 하반절에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위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대비해서 설명합니다. 이 말씀은 위의 것은 선하고 땅에 있는 것은 악하다는 이원론적인 양비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의 것은 ‘영원한 것’을 상징하고 땅의 것은 ‘유한한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언제가 끝나버릴 유한한 것에 매여 살지 말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이지요. 가치 있는 삶이란, 언제가 없어져버릴 것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신비


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무엇으로부터 죽은 것일까요?

땅의 것으로부터, 땅의 것만 생각하고 살던 삶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땅의 것만 추구하던 삶에서 죽었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부활의 신비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고 합니다. 수수께끼 같은 말씀이지요.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아무나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겨우 ‘뭔가가 분명히 있다’는 정도만 압니다. 이것이 기묘, 현묘 혹은 신비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치 안에 누에가 분명히 꿈틀거리고 있는데, 그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어서 누에고치가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는 형상을 표현한 '玄'자는 ‘가물가물거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 보이지 않지만 믿는 것


제대로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은 이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 믿음의 확신, 이것이 오도된 확신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부활의 신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면,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영원, 영생, 부활, 즉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땅의 것과 대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의 열매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신앙의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감추어져 있을 뿐입니다.

추어져 보이지 않지만,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보고 믿는 자보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요 20:29)”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 중심을 보는 안목


병행본문 사도행전의 말씀을 통해서 땅의 것과 위의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4절에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고”라는 베드로의 고백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땅의 것’이란 외모를 보는 것이요, ‘위의 것’이란 중심을 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목을 높이십시오,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중시하는 세상의 생각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사람을 대할 때에도 외모만 보고 판단하지 마시고, 감추어진 중심을 보십시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는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신비를 보는 안목을 갖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 그리스도를 힘입어


사도행전 10장 43절 말씀에 “믿는 사람들은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으로’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살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살아갑니다. 하지만 땅의 것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힘만 바라보고, 세상의 가치 맘몬을 의지해서 살아갑니다. 땅의 것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내 노력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의 스타일


오늘 부활주일예배를 함께 드리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스타일을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의 스타일로 바꾸어 가십시오. 오늘 임직 받으시는 권사님들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의 스타일을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그동안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사셨던 원로권사님들, 위의 것을 추구하며 사셨던 멋진 삶의 스타일을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그분의 영광과 함께 드러날 때까지 지켜 가시길 바랍니다.

 

[거둠기도]


부활하신 주님, 죽음의 어둠 속에서 살아가던 우리들에게 새 생명을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새 생명을 입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땅의 것만 추구하는 삶에 매몰되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것,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주님, 그동안 위의 것을 추구하며 헌신의 삶을 사셨던 원로권사님들, 더욱 더 위의 것을 추구하며 살아갈 신임 권사님들을 축복하여 주셔서 우리가 함께 이루어가는 한남교회가 생명기운이 충만한 교회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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