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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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4.3항쟁 기억주일] 고독한 예수(ppt음성설교 포함)

  • 관리자
  • 2023-04-0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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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2 종려주일/ 4.3항쟁 기억주일
고독한 예수
마태복음 21:1~11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오늘 함께 예배하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마지막 한 주가 시작되는 날, 어린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에, 무리들이 나와 자기의 겉옷과 나뭇가지를 베어 깔고 흔들며 환호하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한 사건을 기억하는 주일입니다.
 

■ 군중들은 왜 환호했는가?


1947년 베두인족 양치기 소년이 유다 광야의 사해부근에 있는 험한 산의 동굴에서 항아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안에는 에세네파 쓴 사본들이 발견되었고, 이 부근의 동굴에서 수도원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쿰란 수도원이고, 이후에 에세네파 가운데 쿰란공동체의 생활이나 조직, 교리가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종려주일,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일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의 후계자로 여겼고,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쿰란공동체와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쿰란공동체는 로마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무력으로 쟁취하고자 했던 에세네파와 긴밀한 연관이 있는 단체였습니다. 에세네파는 이스라엘의 독립운동단체로 다윗 왕국의 영화를 꿈꾸며, 메시아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미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의 유혹을 통해서 쿰란공동체가 추구하던 것을 마다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중들은 예수께 자신들의 욕구를 채워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이제 예수가 자신의 뜻을 접고 군중들의 뜻을 따라 메시아로 오시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대적인 환영이 있었던 것입니다. 
 

■ 광야유혹의 실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받으신 유혹을 생각해 보십시오.

돌로 빵이 되게 하고,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 기적을 행하고, 유혹자에게 절을 해서라도 세상을 통치하라는 유혹은 무장혁명을 통해서라도 로마제국을 전복하고자 했던 쿰란공동체의 이상이었습니다. 쿰란공동체는 광야에서 침묵과 묵상에 힘쓰는 공동체였으나 그들이 원하는 ‘하느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고자했던 것입니다. 돌로 빵을 만들 수 있다면 만들고자 했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다치거나 죽지 않는 기적이라도 일으키고 싶어 했고, 어떤 세상 권력과도 타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루시고자 했던 하나님 나라는 그와 달랐습니다. 그래서 광야의 유혹은 단순히 추상적인 사탄으로부터의 유혹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부터의 유혹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공생애 3년을 보내시고, 이제 다른 방법이 없어 십자가에 자신을 제물로 드리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인데, 제자들과 군중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보고 ‘드디어, 마음을 고쳐먹으시고 우리의 임금이 되시겠구나!’하며 환영하는 것입니다.
 

■ 본문 전후의 맥락(제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전후의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군중들과 예수의 생각의 간극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17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져 사형선고를 받고 조롱당하다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며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마 20:18,19).”

하지만,
이어지는 말씀을 보며 세베대의 아들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께 나와 간청합니다.
조선시대 말로 바꾸면 이런 말입니다.

“예수님, 혁명이 성공해서 왕이 되시거든 야고보는 좌의정에 요한은 우의정에 앉혀주십시오.”

그러자 나머지 열 제자가 분개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너무 답답하신 예수는 ‘서로 섬기라’고 하시며, 본인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자기의 목숨을 많은 이들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마 20:28) 오셨다’고 거듭 밝히십니다. 그러니 곧 죽을 것이라고 거듭 말씀하시는데도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들을 생각이 없습니다. 
 

■ 본문 전후의 맥락(군중)


군중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가신 것은 개선장군들의 타고 오는 말과 대비되는 것이었습니다. 무력으로 승리를 이룬 장군이 아니라, 전쟁터의 군마와 구별되는 무거운 짐을 지고 터덜터덜 걷는 나귀처럼, 예수님도 그렇게 세상의 무거운 죄 짐을 지고 터벅터벅 그 길을 걸어가실 것을 상징하는 것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이 입성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첫 번째로 하신 일은 ‘성전정화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대제사장들과 율법사들에게 예수를 죽일 빌미를 주는 것입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돈을 벌던 모든 구조를 둘러엎는 것도 화가 나는데, 그것을 본 군중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마 21:15)”이라고 외치니 예수를 가만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을 입고 계셨기에 이런 와중에서도 혹시 다른 방도가 있지나 않는지, 혹시라도 이 잔을 자신이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자신의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지만, 제자들이나 군중들은 예수님의 뜻을 헤아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성전정화사건이 몰고 올 파장은 생각하지도 않고, 마냥 신이 난겁니다. “와, 드디어! 맞짱 대결이 시작되었구나!” 이런 겁니다.
 

■ 예수님의 고독


여러분, 이런 상황이니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이런 상황에서도 아직 다 전하지 못한 말씀이 있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앞둔 사나흘 안에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말씀을 다 쏟아내지만, 3년 내내 동고동락했던 제자들조차도 자신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며칠 후면 사랑하던 제자에게 배반을 당하고, 자신이 잡히면 뿔뿔이 흩어질 제자들, 지금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을 외치지만 이내 “바라바!”를 외칠 군중들...그러니 예수님이 얼마나 고독하셨을까요?
 

■ 종려주일과 고간주간


종려주일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를 외치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축하하는 축제의 현장이지만, 우리는 고독하신 예수님을 묵상하는 주일입니다. 종려주일과 부활주일 사이를 우리는 고난주간으로 지키며 주님의 고난을 묵상합니다. 이 기간만큼이라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자제하며 지내시기 발합니다.
 

■ 여전히 고독하신 예수님


그런데 여러분, 이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을 하며 매주일 축제의 예배가 이뤄지는 곳에서도 여전히 고독해하고 계신 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저게 아닌데, 저게 아닌데, 내 뜻이 저게 아닌데. 내가 피로 산 세운 교회가 이런 모습이 아닌데, 나를 따른다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

여전히 예수님은 고독하신 것 아닙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임마누엘로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하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내 생각에 사로잡혀서 예수님을 버린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 마음의 어두운 뒷골목에서 숨죽이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예수님은 여러분을 친구삼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친구이신 예수님을 왕따시키고, 소외시키며 살아가시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한숨 쉬시며 ‘내 맘 알아주는 이 하나도 없네.’하시며 눈물지으시는 것은 아닙니까? 
 

■ 예수님의 친구가 되십시오


여러분, 자기의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가지 마십시오.
감히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 힘쓰십시오. 머리로만 말씀을 이해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려고 힘쓰십시오. “원수도 사랑하라!”하시는데 우리는 원수는 고사하고, 사랑해야 하는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내 생각에 사로잡히면, 우리는 절대로 고독하신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고독하셨던 예수님의 고독은 오늘 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오도된 확신, 오도된 믿음,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이들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도 고독하십니다. 그 예수님의 친구가 되어주십시오. 우리의 손을 어두운 뒷골목 어디선가 울고 계시는 예수님께 내미십시오. 그분의 눈물을 닦아 주십시오.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곳을 보시고, 그곳으로 가시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기도]



주님, 무지한 군중들은 고사하고 사랑하는 제자들조차도 주님이 가시고자 하는 길을 알지 못할 때 얼마나 고독하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주님의 아픔이 가늠되지 않지만, 주님, 고난주간을 보내며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주님의 은총을 힘입어 감히 주님의 동행이 되고자 합니다. 오도된 확신과 그릇된 믿음에 빠져 살지 않게 하셔서, 주님과 함께 진리의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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