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셋째주일(3월 15일)
광야의 시간
출애굽기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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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GuRmxTcLRI
광야와도 같은 시간을 보내는 한남교회 교우여러분,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어제까지 우리는 사순절 16일을 묵상하며 보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40년 광야생활과 비교해 보면 중간을 향해 가는 여정 즈음이되겠습니다.

출애굽기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부분은 애굽으로부터 해방(1:1~15:21)되어 광야로 나온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물이 피가 되는 기적,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생생하게 경험했습니다. 두번째 부분은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 광야생활(15:22~18:27)을 하던 시기입니다. 이때 쓴 물이 단 물로 바뀌는 기적,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인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는 기적 등을 경험합니다. 세번째 부분은 시내산 체험(19:1~40:38)과 성막봉헌까지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사순절 셋째 주일 성서일과는 출애굽기의 두 번째 부분에 해당합니다.
◾맛사&므리바
이스라엘이 직면한 광야는 단순히 지리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광야는 신학적으로도 우주적으로도 혼돈의 상태이고, 고통의 상태요, 역경의 상황입니다. 광야는 척박한 곳이라, 사람은 물론이고 동식물도 살기 어려운 곳입니다. 장정만 육십만 명이 넘는 대규모 였으니 광야에서 인간생존의 기본인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의식주의 문제 중에서 인간을 가장 밑바닥까지 끌어내리는 것은 ‘식’의 문제요, ‘식’의 문제 중에서도 ‘물’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밥을 먹지 않고는 40일 이상도 견딜 수 있지만, 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류 문명이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쓴물이라 마실 수 없었던 마라에서 단물을 얻었던 감격도 잠시, 르비딤에 장막을 친 이스라엘에게 다시 물 문제가 불거집니다. 그러자 백성이 또다시 모세를 원망하며 ‘물을 달라’고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일강을 치던 지팡이를 들고 나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을 치라고 하십니다. 쥐어짜도 물 한방울 나올 수 없었던 반석에서 물이 나와 백성들은 목마름을 해결합니다.
모세는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습니다. ‘맛사’는 ‘이스라엘이 다투었다’는 뜻이요, ‘므리바’는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라는 뜻입니다.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하였다’는 것은 부끄럽고, 잊고 싶은 역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맛사 므리바’라고 명명합니다. 왜 그럴까요? 잊힌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기억’,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맛사 므리바’를 기억할 때마다 모세와 다투고 하나님을 시험하였던 사실을 기억할 것이며, 그럼에도 끝까지 자신들을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기억할 것입니다.
◾Homo passus ‘고통을 감내하는 인간’
어느새 ‘코로나 19’가 인류를 위협하며 확산한지 두 달 가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뿐 아니라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전염병으로 말미암은 이 역경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삶의 여정에서 누구도 ‘역경’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은 진리입니다. 역경이란, 내가 상상하지 못했기에 미리 준비할 수 없어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게 함으로 우리를 힘겹게 하는 그 무엇입니다. 인간은 ‘불확실성 속에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나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고, 대비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런 상상과 준비하는 모든 노력이 무산되는 상황을 맞이하곤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역경’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역경은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이 진리인 것처럼, 지혜로운 자는 어떤 역경이라도 기회로 삼는다는 것도 진리입니다. 역경을 이겨나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고통 속에서 성화(聖化)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역경은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같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교학자 배철현 교수는 ‘고통은 인간을 온전한 인간으로 서서히 조각하는 신의 손길이다’라고 하며 인간을 ‘호모 파수스 Homo passus’라고 정의합니다. ‘고통을 감내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혹은 ‘고통을 통해서 성장하는 인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일상의 소중함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일상의 소중함’을 이야기합니다. ‘코로나19’는 상상할 수 없었던 역경이고, 이것을 극복하고자하는 우리에게 고통이지만, 이 전염병을 통해서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깨달아가는 중입니다. 우리도 주일예배를 가정예배로 드리면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주일성수’가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그뿐 아니라 새벽예배, 수요성경공부, 성가연습, 친교실에서 나누던 식사, 함께 마음을 모아 부르던 찬양, 예배를 마친 후 따스하게 나누던 악수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코로나19’를 극복했을 때, 이 소중한 일상들을 더욱 소중하게 가꿔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일상’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특별한 곳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늘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시편 1편에서는 복있는 자의 삶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흠뻑 젖어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경웅의 <시편사색>에 의하면,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을 ‘涵咀(함저)’라고 하는데, ‘涵(함)’은 말씀에 젖어드는 것을 의미하고, ‘咀(저)’는 그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함저’는 아주 잘게 씹어 맛을 우려낸다는 뜻이 있으며, ‘깊이 음미하여 체득한다’는 뜻을 가집니다. 우리는 ‘자발적 사회거리두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에 젖어드는 ‘함저의 시간’으로 삼아가십시오.
◾교회란 무엇인가?
‘코로나19’로 인해 주일예배를 가정예배로 드리는 사상초유의 일을 겪었습니다. 한 두 주간도 아니고 몇 주간 지속되면서 많은 이들이 아주 중요한 신학적인 문제에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많은 이들이 ‘예배당과 교회’의 차이점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교회’는 ‘에클레시아’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에클레시아’는 하나님께서 세상으로부터 밖으로 불러낸 사람들의 거룩한 모임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번에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한국 교회가 얻은 큰 성과는 우리의 가정도 ‘교회’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건물적인 ‘교회’는 엄밀하게 말하면 ‘예배당’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교회와 예배당을 혼용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배당을 크게 짓는 것과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것을 같은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형교회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부흥도 그렇습니다. 단순히 사람들이 많아 모이는 대형교회를 이루는 것이 부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하는 결단과 말씀에 대해 깊은 깨달음과 그 깨달음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흥이;ㅂ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외적인 성장에만 치중해 온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한국교회를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천지라는 사이비집단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 사건을 통해서 소위 정통교회를 자처하는 우리 자신도 돌아보게 되었습니. 아마도 한국교회사는 현대사가 9.11 테러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졌듯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입니다. 한국교회와 한남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코로나19’ 이후의 교회사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이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는 진정한 ‘에클레시아’가 될 수 있길 기도해 주십시오.
◾광야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직면한 ‘광야의 시간’은 우리 삶의 군더더기를 없애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또한, 이 시간을 신앙의 군더더기를 없애버리고, 오롯이 진리를 향해 선명하게 서는 시간으로 삼아가시길 바랍니다. 이스라엘 40년 광야의 시간, 모세가 경험한 시내산에서의 40일, 호렙산을 향해 40일 주야를 걸어가는 엘리야, 광야에서 40일동안 금식하시던 예수님, 그 광야의 시간을 통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런 광야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어가실 사람을 세웠고, 광야로 나간 이들은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세웠습니다.
이번주 성서일과 중 서신서 히브리서 2장 10절에는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끝에 예수님이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
성서일과 시편 148편은 용과 바다, 불과 우박, 눈과 안개, 광풍 등 ‘고난’을 상징하는 단어들을 나열한 후에 14절에서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지금 광야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광야의 시간을 보낼 때, 광야의 의미를 묵상하며, 광야의 시간에서 우리가 깨달은 바를 통해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시편기자의 고백대로 우리의 뿔을 높여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광야의 시간은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고, 새로운 교회로 성숙해 가도록 훈련하시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와 한남교회는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시험 받는 이들을 능히 도울 수 있는’ 위로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절망하지 마시고 희망의 빛을 바라보며 인내하십시오. 광야의 시간 속에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리하여 반석과도 같은 우리의 메마른 삶에 생명수가 솟아나는 기적을 이루어가길 기도하시며 이겨나가십시오.
[거둠기도]
하나님, 오랜 시간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하지 못하고 각 가정에서 예배하며, 서로를 그리워하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이 광야의 시간에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하시고, 다시 우리에게 일상이 주어졌을 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전염병을 물리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 이 광야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연약함을 떨쳐버리고, 신앙의 근력을 키우는 귀한 일이 가득하게 하옵소서.
가정마다 성부 하나님께서 임마누엘로 지켜주시고,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지켜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민수 목사)